오너일가 감사위원 선출권 평균 38% 축소 전망
국민연금 슈퍼 주주 부상···관치 리스크 우려까지

국민연금 사옥. / 사진=연합뉴스
국민연금 사옥.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상법 2차 개정안이 지난 2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를 대상으로 집중투표제가 의무화되고 감사위원 분리선출 인원도 1명에서 최소 2명 이상으로 늘어난다. 공포 1년 뒤인 2026년 9월 2일부터 시행된다. 이번 개정은 오너일가의 지배력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국민연금의 캐스팅보트 역할을 확대해 정부 영향력이 기업 지배구조에 더 크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대주주 힘 빠지고 소수주주 길 열려···“대주주 안정적 버퍼 사라져”

집중투표제는 소수주주 권리를 강화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주주가 가진 표를 특정 후보에게 몰아줄 수 있도록 허용해, 소수지분을 가진 주주가 연대하면 이사회를 뚫을 가능성을 높여준다. 예컨대 100주를 가진 주주가 3명의 이사를 뽑을 때 기존에는 각 후보에게 100표씩만 행사할 수 있었지만, 집중투표제를 적용하면 300표를 한 명에게 몰아줄 수 있다. 그동안 소수주주가 법적으로 이사 후보를 추천할 수 있었지만, 대주주 의결권에 밀려 실제 당선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에 가까웠다. 이번 의무화는 이러한 구조를 바꿔 소수주주가 최소 1명이라도 이사회에 진입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감사위원 분리선출 역시 대주주 지배력을 제약하는 장치다. 이사 선임과 별도로 감사위원을 따로 뽑는 과정에서 오너일가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은 최대 3%까지만 인정된다. 오너일가가 60%를 보유하더라도 실제로는 3%만 행사할 수 있고, 나머지 주주 40%는 전부 인정돼 전체 유효 투표권 43% 중 오너일가 몫은 약 7%에 불과하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에 50대 그룹 상장사 130곳의 평균 우호지분율은 40.8%지만, 개정안이 적용되면 이 가운데 37.8%는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한다. 구체적으로 세아·롯데·한국앤컴퍼니 등은 절반 이상 지분이 무력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아홀딩스는 오너일가와 계열사·재단이 80.7%를 보유했지만, 감사위원 선출에서는 77.7%가 제한된다. 롯데그룹도 오너일가와 계열사·공익재단을 합쳐 58.3%를 확보하고 있으나 개정안 시행 시 55.3%가 의결권을 잃는다. 한국앤컴퍼니 역시 절반 이상인 57.0%가 무력화된다. 삼성·현대차·LG·한화 등 주요 그룹도 40% 안팎의 지분이 행사 제한을 받는 것으로 추산됐다. 재계 전반에서 “대주주가 갖고 있던 안정적인 버퍼(완충 장치)가 사실상 사라진다”는 위기감이 나오는 이유다.

◇국민연금 영향력 확대로 정부 입김 강화···“주주권 행사 기준·절차 투명해야”

반대로 국민연금의 영향력은 크게 확대될 전망이다. 조사 대상 130개사 중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곳은 74개사(56.9%)에 달하며, 평균 보유율은 8.2%다. 감사위원 선출에서 오너일가가 3%로 묶이는 만큼 국민연금은 사실상 오너일가와 동일한 수준의 표를 확보한다. 캐스팅보트 역할을 통해 이사회 구성에 직접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로 올라서는 셈이다.

여기서 ‘5%’라는 기준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4.9% 주주와 5% 주주의 의결권 자체에는 차이가 없지만, 5%를 넘는 순간 자본시장법상 ‘주요주주’로 분류돼 금융감독원에 보고 의무가 발생한다. 이후 1% 이상 지분 변동이 있을 때마다 공시해야 하고, 보유 목적(단순투자·경영참여)도 반드시 공개된다. 이 때문에 지분율 차이는 0.1%에 불과해도 5%를 넘는 순간 시장과 회사가 주목하는 ‘공개된 영향력 있는 주주’로 성격이 달라진다. 국민연금의 보유율은 단순 투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는 해석이 여기서 나온다.

물론 개정안이 의도한 긍정적 효과는 분명하다. 소수주주 권익이 보호되고, 이사회와 감사위원회의 독립성이 한층 강화되며, 대주주의 전횡 가능성이 줄어든다. 그러나 부정적 효과도 만만치 않다.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은 보건복지부 산하 기금운용위원회가 주도하는 만큼 정권 성향과 정부 정책 방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정 정부가 주주권 행사를 적극적으로 밀어붙이면 기업 지배구조가 정치 논리에 좌우될 수 있고, 반대로 소극적일 경우 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 재계 일각에서는 정부 성향에 따라 기업 지배구조가 좌우되는 ‘관치 리스크’가 제도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제계 한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가진 지분율 자체는 긍정적 자원일 수 있지만, 정부가 지나치게 개입할 경우 기업 의사결정이 정치화되는 부작용을 피하기 어렵다”며 “투자자 신뢰를 유지하려면 주주권 행사의 기준과 절차를 명확히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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