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오르면 가격 급락···1999년 70% 하락
지정학적 리스크, 금리 정책, 중앙은행 수요 살펴야
[시사저널e=강동희 신한 Premier PWM 강남센터 팀장] 금(金)은 수천 년 동안 인류와 함께해온 자산이다. 왕조의 보물창고에서 현대 중앙은행의 금고까지, 금은 늘 부와 권력의 상징이자 가치의 저장고였다. 1971년 미국이 금 본위제를 폐지하면서 금 가격은 자유롭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1974년 뉴욕상품거래소에서 금 선물 거래가 개시되며 본격적인 국제 금융자산으로 자리 잡았다.
그렇다면 왜 금은 ‘안전자산’으로 불릴까? 이유는 단순하다. 세상이 흔들릴 때마다 투자자들이 돌아간 곳이 바로 금이었기 때문이다. 금은 공급이 한정되어 있으며, 무엇보다 수천 년 동안 가치를 잃지 않았다. 인플레이션, 금융위기, 전쟁이 닥칠 때마다 종이돈 대신 금이 선택된 경험이 쌓이며 ‘위기 피난처’라는 명성을 얻었다. 게다가 최근 5년간 국제 금 시세가 약 90%이상 상승하면서 ‘금은 언제나 오른다’는 인식까지 강화됐다.
하지만 ‘안전자산’이라는 이름이 곧 수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금은 역사 속에서 수차례 극적인 롤러코스터를 보여줬다. 1980년 1월, 금 가격은 온스당 850달러까지 솟구쳤다. 그러나 달러 강세와 금리 인상에 무너져 1999년에는 250달러 선까지 추락했다. 최고점 대비 마이너스(–) 70%. 무려 20년 넘는 시간 동안 회복되지 못한 채 투자자들을 하염없이 기다리게 했다.
2011년에는 다시 1920달러로 화려한 정점을 찍었지만, 불과 4년 만에 45% 급락했다. 2013년 한 해 동안만 28%를 내리며 투자자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이때의 상처는 깊었고, 2011년 고점을 다시 회복하는 데만 8년이 넘게 걸렸다. 2021년에도 5% 하락했다.
‘안전자산’이라는 이름 뒤에 숨은 금의 진짜 얼굴은 바로 이것이다. 금은 위기 때는 빛나지만, 위기가 지나면 가장 먼저 빛을 잃는다. 등락의 파도는 거세고, 투자 시점에 따라 누구든 큰 손실을 감내해야 할 수 있다.
이에 투자자는 단순한 ‘위기 보험’이라는 틀을 넘어, 금값에 영향을 주는 핵심 요인들을 함께 살펴야 한다.
첫째는 지정학적 리스크다. 전쟁, 무역 갈등, 정치적 불확실성. 이런 키워드가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순간, 시장은 곧장 금으로 달려간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금값이 순식간에 2000달러를 넘어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둘째는 금리 정책이다. 금은 이자를 주지 않는다. 그래서 금리 그 자체가 기회비용이 된다. 연준이 금리를 올리면 금은 힘을 잃고, 반대로 금리 인하가 시작되면 금은 다시 살아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초저금리 환경 속에서 금이 역사적 고점을 경신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마지막은 중앙은행의 수요다. 최근 금 시장의 가장 큰 손님은 개인 투자자가 아니다. 각국 중앙은행이다. 2022년 전 세계 중앙은행이 사들인 금은 70여년 만의 최대치였다. 달러 의존도를 줄이고자 하는 흐름 속에서 금은 ‘국가 단위의 보험’으로 다시 자리 잡고 있다.
결국 금은 하루 이틀 오르내림을 맞히는 투기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긴 호흡으로 자산을 지켜주는 ‘보험’ 같은 존재다. 포트폴리오의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투자자는 무엇을 봐야 할까? 바로 세 가지 신호다. 세계를 흔드는 지정학적 변수, 돈의 값을 바꾸는 금리 정책, 그리고 시장의 큰손인 중앙은행의 매입 수요. 이 세 가지 퍼즐을 읽어낼 줄 아는 사람이 금 투자에서 타이밍을 잡을 수 있다.
따라서 금은 오늘의 베팅이 아니라 내일의 안전을 위한 분산투자의 한 조각으로 담아야 한다. 그것이 금을 대하는 가장 현명한 태도다.
신한 Premier PWM강남센터
강동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