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e=서지용 상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 최근 정부는 재정적 어려움을 겪었던 서민과 소상공인을 지원하기 위해 ‘신용사면’ 정책을 발표했다.
이번 정책의 주요 내용은 코로나19 발발 이후 최근까지 5000만원 이하의 연체 채무를 가진 개인과 개인사업자가 올해 12월 말까지 전액 상환시, 기존 연체 기록을 전면 삭제해주는 것이다. 신용사면 대상자는 최대 324만명에 달하며 현재까지 272만명이 이미 조건을 충족했고, 나머지 52만명도 연말까지 채무를 갚으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해당 정책으로 연체 기록이 삭제된 차주는 금융 거래와 카드 발급 등에서 불이익이 해소되고, 신용 점수도 평균 31~100점가량 상승할 것으로 예측된다. 과거에는 연체 이력이 신용정보원에 1년, 신용평가사에 5년간 보관됐지만 이번 조치로 상당수의 연체 차주가 신속하게 정상 경제활동으로 복귀할 수 있게 된다.
정부는 신용 사면의 취지를 ‘금융 취약계층이 경제 주체로 복귀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금융위원회는 코로나19와 경기침체라는 비상 상황을 감안했고, 성실히 빚을 다 갚은 이들에게 한정해 연체 이력 정보를 삭제하기 때문에 도덕적 해이 우려는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모든 연체 기록이 일괄 삭제될 경우, 2금융권이나 카드사 등 금융회사들이 고위험 차주를 선별하기 어려워져 내부 건전성 관리에 부담이 커질 우려가 있다. 카드사들은 이미 연체율 상승 등으로 건전성 경고등이 켜져 있는 상황에서, 연체 기록 삭제가 도입되면 신용도 평가체계가 왜곡될 수 있다.
먼저 카드사는 최근 실질 연체율(대환대출 포함 1개월 이상 연체)이 1.93%에 달하며, 이는 1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특히, 주요 카드사의 올해 상반기 순이익은 전년동기 대비 약 18%나 감소했다. 가맹점 수수료율 인하, 경기 악화, 취약 차주 증가 등이 겹치면서 대손비용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연체 기록 삭제로 신용도가 인위적으로 상승한 차주들이 카드를 재발급 받거나, 카드론 등 대출을 다시 이용하게 될 경우 연체와 부실 위험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신용사면 대부분이 중·저신용자라는 점에서 위험 차주들의 시장 재진입으로 연체율의 추가 상승시 카드업 전반의 유동성 관리에도 부담이 커질 것이다.
저축은행 업권도 상황이 심각하다. 저축은행의 올해 가계대출 연체율은 시중은행보다 10배 이상 높다. 금융당국은 저축은행 내 최대 10곳을 대상으로 현장 점검에 나설 정도로 연체율 및 내부 위험관리 체계, 충당금 적립 적정성 등에 대한 우려가 크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로 인해 업권 내에서 무더기로 신용등급 강등 및 전망 하향이 발생하고 있으며, 올해에도 저축은행 8곳의 신용평가 등급이 하락했다.
따라서 성실하게 장기 상환을 이행한 차주를 선별적으로 대상으로 하고, 일정기간 동안 연체 기록을 일부 유지한 뒤 단계적으로 삭제하거나, 재연체 위험이 높은 차주에 대해서는 연체 정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보완이 필요하다.
미국의 경우 공정 신용정보보고법(FCRA:Fair Credit Reporting Act)에 따라 파산이나 연체 등 부정적 신용정보는 7년간 기록되고, 성실 상환자라도 즉각 기록이 삭제되는 것이 아니라 1년 이상 꾸준히 성실 상환이 확인되면, 조기 삭제가 가능하다.
결국 신용사면 정책은 취약계층의 경제적 재기를 지원하는 긍정적 효과가 있지만, 금융시장 건전성과 도덕적 해이 문제, 카드사 및 2금융권의 신용평가 체계 악화 등 잠재적 부작용을 완화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절실하다. 단계적 기록 삭제, 성실 상환자 중심 지원, 위험 차주 선별 강화 등 정책 개선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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