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페루즈 해협과 동해의 항로 안정성, 지금부터 전략적 점검이 필요

[시사저널e=이한훈 글로벌컨설팅네트워크(GCNC) 이사장 ]  북극항로(Northern Sea Route, NSR)는 유럽과 동아시아를 가장 짧은 거리로 연결하는 차세대 해상물류 루트다. 2035년이면, 기후 변화와 기술 발전에 따라 이 항로는 본격적인 상업운항 시대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부산항은 이 북극항로의 관문이자, 아시아권 선박의 중간 기항지로서 막대한 전략적 가치를 지닌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강조했던 ‘부산의 북극항로 거점 도시화’ 구상과,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 추진 역시 이러한 흐름에 부응하는 중장기 국가전략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북극항로의 활성화가 단순한 기회가 아니라 지정학적 과제를 동반한 도전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우리는 항로의 ‘진입지점’인 동해와 라페루즈 해협의 항로 안정성 확보 문제에 더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시점이다.

동해–라페루즈 해협, 지정학적 병목지대 될 수도

라페루즈 해협은 일본 홋카이도와 러시아령 사할린섬 사이, 약 43km의 좁은 해역으로 아시아에서 출발한 선박이 동해를 지나 북극항로로 진입하기 위한 사실상 유일한 관문이다. 라페루즈 해협(일본명 소야 해협)은 1785년 프랑스 라페루즈 백작이 루이 16세의 명으로 태평양을 탐험하고 1787년 이 해협을 통과하면서, 라페루즈 해협으로 명명되었다. 이곳은 역사적으로도 군사·정치적 긴장이 교차해 온 해역이며, 최근에도 러시아와 일본 간의 영유권 갈등, 해군 훈련 등이 일대 해상안보의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다. 특히 해협 주변에서 반복되는 자위대의 정례 훈련, AIS(자동식별시스템) 미작동 함정 출현 등은 일부 상선에게 항로 회피 판단을 유도할 가능성도 지니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은 단순히 외교적 갈등을 넘어서, 우리 해운·항만 산업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해상 안보 리스크’로 확대될 여지도 있다.

부산항, 기회의 전진기지… 그러나 항로 안정성은 국가적 과제

전문가들은 2035년 기준 북극항로를 이용하는 아시아 출발 선박이 연간 약 9,000척, 물동량은 최대 1,000만 TEU에 이를 수 있다고 예상하고 있다. 이 중 상당수가 동남아·중국·대만발 선박이며, 그 중간 기착지로 부산의 전략적 위상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그러나 만약 라페루즈 해협이 지속적인 군사훈련, 외교갈등, 또는 해상사고 등의 이유로 불안정 해역으로 인식된다면, 선사들은 더 긴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태평양 연안을 따라 북상하거나, 기항지를 변경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 경우 부산이 확보할 수 있었던 환적 수요, 벙커링, 정비, 금융 서비스 등 항만경제적 기회가 일본 항만이나 제3의 우회 항로로 이동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해결책'보다 '접근 방법'

이 문제는 단순히 ‘지정학적 위험이 있다’고 끝낼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우리는 오히려 지금부터 북극항로 주요 해협의 항행 안정성에 대한 리스크 시나리오 연구, 정부-민간-지방정부-국책기관의 협력 프레임 재설계, 통항권 확보를 위한 다자외교 채널의 가능성 타진, 국내 해운기업 및 항만 공사들과의 실무 인터뷰 및 데이터 수집 등을 통해 '해법에 접근하기 위한 상시 가동형 태스크 포스'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 정부 당국은 동 사안을 단순한 외교·안보 문제로만 봐서는 안 될 것이다. 북극항로와 연결되는 해협의 안정성 확보는, 곧 한국 해운·물류·항만산업의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는 일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논의가 진행돼야 할 시점이다. 첫째 외교부, 해양수산부, 국회 등 관계기관이 참여하는 정책 브리핑 세션 개최, 둘째 현장 기반의 실무 인터뷰 및 항로 시나리오 리서치 착수, 셋째 KMI, KIEP, KIDA 등 국책기관과의 협업 연구 등이다. 이 과정을 통해 한국은 단지 북극항로의 ‘사용국’이 아니라, 국제적인 항로 설계와 항행 안정성의 ‘의제 주도국’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한훈 글로벌컨설팅네트워크(GCNC) 이사장 (전 외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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