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e=문근식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 미국은 지금 조선업 재건이라는 대전환기에 직면해 있다. 해군력 증강, 물류 주권 확보, 반도체·에너지 플랜트 관련 선박 수요 증가 등으로 선박 발주가 급증하고 있지만, 정작 이를 생산할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 상황에서 한국이 최적의 파트너로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한 기술력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숙련 기능인력과 글로벌 인력 관리 체계를 동시에 갖춘 나라다.
현재 조선 현장에서는 용접, 배관, 도장, 의장 등 핵심 기술인력의 부족이 심각한 병목 현상을 초래하고 있다. 한국은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등을 통해 해당 분야의 숙련 인력을 다수 확보하고 있으며, 제3국 출신 인력(필리핀, 베트남 등)을 효과적으로 교육하고 관리해본 경험도 풍부하다. 이제는 단순한 기능 인력의 공급을 넘어, ‘한국형 조선 인력 패키지’를 수출하는 새로운 모델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를 위해 첫째, 한국의 숙련 기술자를 중심으로 미국 조선소에 단기 및 중기 파견 프로그램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경력 5년 이상의 한국 기능 인력은 미국 조선 현장에서 즉시 투입이 가능하며, 품질 관리 측면에서도 현격한 차이를 만들어낼 것이다. 이미 은퇴한 기술자들의 재고용도 하나의 해법이 될 수 있다.
둘째, 제3국 인력을 한국 내에서 사전 교육·훈련한 뒤 미국 현장에 전환 배치하는 ‘2단계 모델’이 효과적이다. 이들이 한국에서 미국식 안전 기준과 공정 관리를 익히고 현장에 투입된다면, 비용은 절감되면서도 생산성은 오히려 높아진다. 미국은 단순히 인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관리 가능한 인력’을 원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최근에는 한국 내에서도 필리핀, 베트남 등 전통적인 인력 공급국의 기능 인력 확보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중동, 유럽, 일본 등이 이들 국가의 기능 인력을 유치하기 위해 임금과 복지 경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K-조선형 글로벌 인력 확보 전략’에도 대대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한국은 미국 조선소 투입을 전제로 기능 인력을 유치하기 위해, 경쟁력 있는 연봉, 기숙사 및 건강보험, 현지 정착 지원금 등 복지 패키지를 제공해야 한다. 여기에 영어 및 안전 교육을 포함한 일정 기간의 집중 훈련 프로그램을 운영함으로써, ‘단순 고용’이 아닌 ‘유학-훈련-근무’로 이어지는 K-조선 글로벌 인력 사다리를 제도화해야 한다. 그래야 장기적인 인력 순환 및 관리가 가능하다.
셋째, 한국 기업 간 컨소시엄을 통해 공동 인력 파견 체계를 정립해야 한다. 대형 조선소와 중소 협력업체가 연계된 파견 시스템을 통해 인력 순환을 유도하고, 품질 표준화와 안정적인 공급 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
이른바 ‘K-조선 시스템’은 단순히 배만 잘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력을 설계하고 훈련하며 효율적으로 운용하는 능력까지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차원이 다르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이 전략은 한미 양국에 모두 ‘윈윈’이다. 미국은 향후 수년 내에 150척 이상의 군함과 상선을 건조해야 하는 상황인데, 인력 부족으로 발주량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이 인력 패키지를 공급해 미국 조선소의 생산성과 납기를 개선한다면, 한국의 조선 기자재, 설계 서비스, 정비(MRO) 산업까지도 동반 진출할 수 있다. 이는 단기적 고용 문제가 아니라, 향후 20년 이상 지속 가능한 한미 조선 파트너십의 기회다.
이러한 전략을 제도화하고 지속 가능한 틀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민간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수적이다. 특히, 현재 일각에서 논의되고 있는 ‘한미 조선 협의 그룹(Shipbuilding Consultative Group, SCG)’의 조속한 출범이 요구된다. SCG는 단순한 정보 교류 창구를 넘어, 한미 간 조선 인력·설비·기술 협력을 총괄 조율하는 전략 기구로 기능해야 한다. 산업통상자원부, 외교부, 국방부, 고용노동부 등 관계 부처가 공동으로 컨트롤타워를 구성해, 2025년 하반기 중 조선 인력 협력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미국은 자국 보호주의법(Buy American Act, SHIPS법)으로 인해 해외 인력 수용에 제약을 받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가올 한미 정상회담은 한국이 ‘신뢰할 수 있는 조선 동맹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일본이나 유럽의 조선 강국에 그 자리를 내줄 수도 있다.
조선은 단순히 철을 자르고 붙이는 산업이 아니다. 군사, 물류, 에너지, 외교 전략이 복합적으로 얽힌 고차원의 복합 산업이다. 한국이 미국에 공급해야 할 것은 단순한 노동력이 아니라, ‘기술·품질·교육·관리’가 통합된 K-조선 인력 생태계 그 자체다. 이것이야말로 한미 조선 협력의 진정한 시너지이며, 미국 조선업 재건의 가장 빠르고 확실한 해답이다.
#문근식 한양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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