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소비
잡지를 만들다 보면 수많은 물건을 접하게 되지만, 정작 손에 남는 건 작고 사적인 소비다. 이달 에디터의 일상에 닿았던 소비의 한 장면을 담는다.
1. 식물에서 얻은 성분으로 만들어, 얼룩의 원인이 되는 단백질을 부드럽지만 강력하게 분해하는 ‘얼룩제거제’. 295ml, 3만6000원 라버리.
2. 이끼로 뒤덮인 숲속, 시간이 멈춘 듯 신비로우면서도 상쾌한 흙 내음의 ‘타임 앤 모스’. 50ml, 10만9000원 로이비.
3. 《명상록》은 스토아철학의 위대한 실천자로 불리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전쟁터에서 인생과 우주의 본성, 신들의 존재 방식에 관해 기록한 일종의 수상록. 1만2000원 현대지성.
각자 자기만의 ‘여름 소비’가 있겠지만, 나에게 여름에 행해지는 소비는 나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다. 작은 아이템 하나로 무더위에 흐트러지는 일상과 기분, 태도를 다잡을 수 있다면, 어쩌면 그것이 이 계절에 가장 정당한 사치일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달 가장 값진 소비는 밥 한 끼 값으로 산 마음의 평정이었다. 삶의 기초가 흔들린다고 느껴질 땐 철학서를 읽으라고 했던가. 마음이 어지러울 때《명상록》의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한 줄 읽다 보면 그 순간만큼은 마음이 잠잠해진다. “육신은 단정하고 당당해야 하며, 움직일 때나 멈춰 있을 때나 흐트러짐이 없어야 한다. 정신의 기품은 얼굴 표정처럼 온몸에 드러나야 한다.” 그 한 줄을 곱씹으면, 무기력에 잠식되던 몸과 마음이 다시 단정한 자세를 찾아간다. 자연스레 스스로의 차림새도 돌아보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은 향수를 뿌리는 작은 의식을 더했다. 스스로를 조금 더 세심하게 가꾸는 기분이 들어서다. 손이 자주 가는 건 오 드 퍼퓸 ‘타임 앤 모스’. 흙 내음과 모스, 파촐리가 블렌딩됐다지만, 솔직히 내 코는 그만큼 섬세하지 않다. 오히려 이 향은 내게 몽블랑 펜촉에서 나는 정제된 금속의 냄새에 가깝다. 향 하나만으로도 지적 허영심까지 충족되는 기분. 향을 더하고 나니 매무새의 사소한 흐트러짐조차 눈에 들어온다. 예전에는 그냥 지나쳤을 작은 얼룩이 이제는 마음을 어지럽히는 작은 균열처럼 느껴졌다. 이어 얼룩 제거제를 하나 들였다. 얼룩 위에 가볍게 뿌리고 잠시 두었다가 닦아내면 와인 얼룩도, 펜 자국도 말끔히 사라진다. 이달의 소비를 되짚어본 끝에 깨달았다. 그것은 단순히 물건을 사는 일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삶의 풍경을 조금 더 정돈하고 매일의 시간을 더 의식하며 살아가려는 작은 다짐이었다.
editor 김소연
취재 협조 라버리 laveree.co.kr, 로이비 @loivie.official, 현대지성 hdjisung.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