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저 특혜 의혹부터 가덕도 계약 파기, 오산 옹벽 붕괴까지 연쇄 악재
부산시의회 입찰 제한 결의안 통과···정부 차원 제재 가능성도 거론
잇따른 논란에 공공발주 사업 수주 ‘걸림돌’···업계 ”입찰서 불리할 수도“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현대건설이 공공사업 시장에서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대통령 관저 특혜 의혹부터 가덕도신공항 계약 파기, 오산 옹벽 붕괴 사고 등 여러 구설수에 잇따라 오르내리면서다. 논란이 길어질수록 공공 발주 사업 수주에 걸림돌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부산시의회는 최근 가덕도신공항 부지조성공사에서 철수한 현대건설에 대해 입찰 제한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가덕도신공항은 10조원이 넘는 예산이 투입되는 대규모 국책사업이다. 현대건설은 지난해 네 차례의 유찰 끝에 수의계약 형식으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하지만 공사 기간을 두고 정부와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지난 5월 말 돌연 사업을 포기했다.
당시 현대건설은 초연약지반 위에 활주로와 방파제 등을 조성해야 하는 기술적 난이도를 고려하면 정부가 제시한 공사기간(84개월)이 지나치게 짧다고 지적했다. 시공 안정성과 품질 확보를 이유로 공사기간을 최소 108개월로 늘려달라고 요구했지만 협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현대건설은 협상 결렬을 선언하고 컨소시엄에서 탈퇴했다.
논란은 현대건설이 2900억원 규모 부산 벡스코 제3전시장 건립 등 부산지역 대형 공공사업 입찰에 관심을 가지면서 시작됐다. 정치권과 시민단체는 국가적 책무는 저버리고 수익성 핵심 공공사업에만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부산시의회는 “현대건설은 지역과 국민의 신뢰를 저버리고 국책사업에서 발을 뺀 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른 사업에 참여하려 한다”며 “부산시가 자체적으로 입찰 제한 등의 조치를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시의원들이 정파를 초월해 결의안에 공동 서명했다는 점도 지역 내 분위기를 보여준다.
정치권은 더 나아가 이번 철수 결정이 단순한 공정 갈등이 아니라, 이전 정권과 얽힌 특혜 의혹과 관련된 ‘정무적 판단’일 수 있다는 의심을 제기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 시정평가대안특위 위원장인 최인호 전 의원은 어제(27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현대건설이 윤석열 정부 시절 대통령 관저 공사를 뇌물성으로 맡았고, 그 대가로 가덕도 사업을 수의계약으로 받은 정황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 공사를 요청한 인물로 김용현 전 대통령 경호처장과 김오진 전 대통령실 관리비서관(후에 국토부 1차관으로 임명)을 지목하며 현대건설과 이들 사이에 정무적 유착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최 전 의원은 “정권 교체 가능성이 커지자 현대건설이 계약을 포기하며 ‘꼬리 자르기’에 나선 것”이라며 “오는 30일 김건희 특검에 이와 관련한 수사요청서를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 차원의 제재 가능성도 거론된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달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현대건설의 가덕도 사업 철수가 국가계약법상 부정당업자 지정 사유에 해당하는지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부정당업자’로 지정되면 현대건설은 최대 2년간 모든 국가계약 입찰에서 제외된다. 아직 정식 계약 체결 전 탈퇴였다는 이유로 법적 해석이 엇갈리고 있지만 정치·사회적 후폭풍은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여기에 경기 오산에서 발생한 고가도로 옹벽 붕괴 사고까지 겹치면서 논란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지난 16일 경기 오산시 가장교차로 고가도로의 옹벽이 붕괴해 아래 도로를 지나던 차량 운전자 1명이 숨졌다. 경찰은 현재 현대건설 본사를 포함해 오산시청, 감리업체인 국토안전관리원 등 3곳에 대해 압수수색을 진행 중이다. 시공 당시 공법과 유지관리 이력을 전방위로 조사하고 있다.
해당 옹벽은 2011년 현대건설이 시공해 완공한 뒤 오산시에 기부채납된 공공시설물이다. 이후 관리는 시가 맡아왔고 토목공사에 적용되는 하자보수 책임 기간(10년)도 이미 지났다.
현대건설 측은 “기부채납 이후 소유권은 시로 넘어갔고 이후의 유지관리 책임도 시에 있다”며 직접적인 법적 책임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다. 다만 기부채납을 받은 시설물이라도 시공 단계부터의 품질 책임도 간과할 수 없는 만큼, 현대건설과 오산시 사이 책임 공방전으로 비화될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업계에선 잇따른 논란이 현대건설의 공공사업 수주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공공이 발주하는 대형 공사는 가격 외에도 시공사의 사회적 책임, 안전관리 능력, 기업 신뢰도 등 정성평가가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작용한다.
특히 기술형 입찰이나 종합심사낙찰제 방식에서는 정성 항목이 전체 평가에서 30~50% 비중을 차지하기도 해 시공사의 이미지와 평판이 수주 결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건설의 시공 역량 자체에 큰 문제가 있다는 시각은 많지 않지만 공공 발주처 입장에서는 정치적 부담이나 지역 여론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며 “논란이 이어질 경우 실적과 무관하게 공공사업에서는 불리한 위치에 설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