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조정, 사회적 비용 측면에서 불가피한 선택
장기 연체·저소득층 한정···재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 성격
[시사저널e=김희진 기자] 이재명 정부가 발표한 소상공인·자영업자 채무조정 대책을 두고 논란이 뜨겁다. 코로나19로 인한 금융지원 만기 연장과 상환유예 조치가 종료되면서 금융부담을 감당하지 못하는 취약차주들이 속출하자 정부가 내놓은 해법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수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대출금을 성실히 상환한 이들마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같은 지적은 분명 일리가 있다. 빚을 제대로 갚는 사람이 손해 보는 구조는 금융 질서와 신뢰를 저해한다. 정부 주도의 채무조정이 남발될 경우 금융시장의 신뢰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결코 가볍게 넘길 사안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 조치는 단순한 ‘빚 탕감’으로만 볼 수 없다. 코로나 위기 이후 고금리, 경기 둔화가 이어지면서 자영업자들의 경제활동이 정상화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미 상환 능력을 상실한 계층에게 과도한 빚 부담을 지운 채 방치하는 것이야말로 더 큰 사회적 비용으로 돌아올 수 있다.
채무조정은 취약계층이 정상적인 경제활동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 ‘재기의 사다리’에 가깝다. 금융권은 부실채권을 조기에 정리해 리스크를 관리하고 정부는 사회안전망 역할을 강화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상환 능력이 없는 차주에게 무작정 빚을 떠안게 하면 결국 신용불량자와 파산자가 늘어나고, 이는 장기적으로 경제의 생산성을 갉아먹는 결과로 이어진다.
특히 이번 정부 대책에서 장기 연체 채권 조정안은 일정한 기준을 두고 있다. 대상은 7년 이상 빚을 갚지 못한 5000만 원 이하의 개인 채무자로 여기에 더해 중위소득 60% 이하인 연체자로 한정된다. 1인 가구 기준으로 보면 월 143만원 이하의 소득자다. 이는 최저생계비 수준에 가까운 금액으로 이미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통한 상환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 놓인 이들이다.
결국 이 조치는 단순한 채무 감면이 아니라 최저 생활을 유지하며 사회 구성원으로 다시 설 수 있도록 돕는 일종의 생계 안전망 성격에 가깝다.
채무조정 대책은 단순히 채무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단기적으로는 형평성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취약계층을 회생시키고 사회 전체의 부담을 덜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하다.
성실 상환자에 대한 인센티브와 형평성을 고려한 보완책을 함께 마련하고 재기의 디딤돌이 될 수 있도록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