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IT업체 참여 끌어내려면 유인책 마련해야
[시사저널e=송주영 기자] 정부가 추진 중인 국가 바이오빅데이터 사업이 국민 뿐만 아니라 임상현장 협조 없이 속도를 내기 어렵단 지적이 나왔다. 정보를 수집하는 병원과 활용 체계를 IT기업이 사업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유인책과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는 요구다. 의료데이터 활용과 관련해 개인정보 처리 특례 마련 등도 핵심 제도 개선 과제로 지목됐다.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이주영 개혁신당 의원 주최로 열린 ‘의료데이터 활용도 제고를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규제 개선 필요성과 민간 참여 유도 방안이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정부는 의료경쟁력 강화와 국민 의료서비스 개선 등을 목적으로 의료데이터 전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민 동의를 기반으로 유전체·임상 정보를 통합 구축하는 ‘국가통합바이오빅데이터사업(BIKO)’도 지난해부터 본격화했다.
의료 빅데이터 구축에 가장 큰 과제는 민감 정보인 의료정보 수집이 꼽힌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신뢰와 보상을 전제로 한 데이터 수집 체계 정비를 촉구했다.
BIKO는 보건복지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질병관리청 등이 협력해 2027년까지 총 100만명 규모의 유전체·임상 데이터를 2028년까지 구축하겠단 계획이다. 1차로 77만명 모집을 목표로 한다. 일반 국민 58만5000명, 중증질환자 13만명, 희귀질환자 4만7000명 등을 포함한 구조다. 올해 4월부터 시작해서 4만5000여명에게 정보 제공 동의서를 받았다.
엄보영 국가바이오빅데이터사업단장은 “동의한 100만명 국민을 대상으로 한 유전체 데이터, 임상정보를 수집하고 있고 라이프로그까지 만들 것”이라며 “공공 데이터를 결합시켜서 개인 맞춤형 정보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예비타당성 조사를 3수를 한 상황이다보니 많이 늦었다. 기획 후 10년의 세월이 지나 늦게 출발했고 늦게 출발한만큼 기술도 많이 발전한 상황이긴 하지만 조속히 목표에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 사업을 통해 개인 맞춤형 건강관리를 실현하고 진단·치료의 정밀화에 기여할 계획이다. 맞춤형 보건의료정책 수립과 산업계와 연구계 혁신 기반도 제공하겠단 전략이다. 먼저 희귀질환 연구부터 단계적으로 시작한다.
산업계는 바이오 산업 발전과 맞춤형 의료 서비스를 구현하려면 데이터 확보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활용가능한 생태계 조성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종수 마이크로소프트 이사는 “전 세계적으로 생성되는 의료데이터의 97%가 활용되지 못하고 사장된다”고 말했다. 마이크로소프트에 따르면 매년 생성되는 데이터의 양은 50페타바이트(PB)에 달한다.
전 이사는 “대부분의 의료정보는 텍스트가 아니고 딥러닝에 이용할 수 있도록 전처리하기 힘든 구조”라며 데이터 수집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의료진이 주로 텍스트 형태로 친료기록지를 쓰다보니 데이터화하기가 어렵단 것이다.
이외에 통합 AI 에이전트의 필요성도 강조됐다. 질병을 진단하기 위해 여러 분야 전문의가 협업하기도 하는데 이 과정 하나하나를 에이전트로 구현해 자동화하잔 것이다.
그는 “진단 과정에도 여러 의료진이 협력하는데 각각의 전문 분야와 관련한 에이전트를 만들어 자동화할 수 있다”며 “표준 프로토콜을 정의할 에이전트까지 만들어 정보를 수집하고 토론하면 효율적으로 의료서비스를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희봉 LG화학 생명과학본부 전무는 “산업계의 가장 큰 화두는 중국이고 바이오분야도 마찬가지다. 중국이 바이오 분야에도 빠르게 성장해 기술 수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며 “국가가 주관해서 20년 동안 건강검진을 하고 고품질의 데이터를 모은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을텐데 체계적으로 구축한 고품질 데이터가 없다”며 “LG AI연구원은 작년 잭슨랩과 유전체 질환 관련해서 협업을 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규제도 걸림돌이다. 국내 의료 정보는 규제의 벽에 막혀 해외 유출이 불가능한데 연구의 상당 부분이 해외에서 이뤄지기 떄문이다.
이 전무는 “규제로 연구 데이터를 해외로 유출하고 해외 데이터라도 국내에 한번 들어왔다면 다시 반출이 불가능해 법을 위반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적지 않은 돈을 주고 계약하기도 하는데 좋은 데이터셋이 구축되면 한국 바이오산업 경쟁력의 한 요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갈한천 카카오헬스케어 부사장은 “정부에서 의료 빅데이터를 구축하며 정책과 가이드가 빠르게 진행되는데 더 중요한건 국민의 인식 재고”라며 “병원이 데이터를 활용하고 수익화를 시킨단 선입견이 있는데 의료 정보를 잘 구축하면 국민 치료환경이 개선될 수 있단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의료기관에게 정보 제공을 요구하는데 충분한 보상이 있어야만 의료계가 움직일 것”이라며 “국민의 의식도 함께 움직이는 것이 데이터 구축의 선결과제”라고 덧붙였다.
평화IS 정태건 상무는 “EMR 고도화를 위한 인증제 2단계가 시행됐지만, 보상체계가 없다 보니 참여 병원이 미미하다”며 “의료기관이 건강정보고속도로에 데이터를 제공했을 때, 얼마나 수익이나 진료에 도움이 되는지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 입법조사처 김은정 조사관은 “EMR을 같이 활용해보잔 얘기가 많이 나왔다”며 “장기간 데이터 다수의 연구를 해보면 의사들이 내 지식에 기반해 내가 하고 싶은 진료를 해야 하는데 표준화는 진료 정보 기록을 제한해 오히려 불편하단 시각이 있다”며 의료환경에 맞는 표준화 시스템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해외는 정보 공유로 산업 정보로 활용하는 사례가 다수 있다. 미국은 보험사가 병원을 소유하고 병원 정보를 활용해 맞춤의료와 보험상품을 개발한다. 핀란드는 예방접종부터 사망기록까지 국민 건강 이력을 ‘칸타(Kanta)’ 플랫폼으로 통합해 활용하도록 했다. 제약강국인 독일도 의료 정보를 제약회사가 사용할 수 있는 길이 열려있다.
이날 토론회를 주최한 국민의힘 이주영 의원은 “의료데이터는 산업혁신의 핵심 자산이자, 국민건강을 위한 공공재”라며 “현장과 산업계가 요청한 내용을 국회가 뒷받침할 수 있도록 입법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