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 사진미술관

사진은 빛과 시간을 담은 예술이다.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은 그 본질을 닮은 공간.
빛과 그림자, 곡선과 직선이 교차하는 이곳에서, 사진을 위한 새로운 장면이 펼쳐진다. 

서울시 도봉구 창동에 사진을 위한 특별한 공간이 탄생했다. 지난 5월 29일 문을 연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은 국내 공공미술관 가운데 처음으로, 오로지 사진이라는 한 매체에 집중해 기획된 곳이다. 완공까지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고, 오랜 기다림 끝에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지하 2층부터 지상 4층까지 이어지는 건물 안에는 사진 수장고와 전시장은 물론, 포토 북 카페, 사진 라이브러리, 암실 등 누구나 사진을 더 가까이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채워졌다. 미술관 건물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그 독특한 형태다. 여러 장의 카드를 반듯하게 쌓아 올린 뒤 그것을 비틀어 놓은 듯한 모습. 수평으로 쌓아 올린 콘크리트 루버 사이로 얇은 철판 네트를 덧대어 구현한 이 구조는 묵직함과 가벼움이 공존하며, 자연스러운 리듬감을 품고 있다. 이 형태의 출발점은 한 장의 스케치였다. 오스트리아 건축가 믈라덴 야드리치 교수와 한국의 일구구공 도시건축 건축사사무소(주)를 이끄는 윤근주 소장이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설계를 함께 맡았다. 이 둘의 협업은 야드리치 교수가 윤근주 소장에게 보낸 한 장의 스케치에서 시작됐다. 정사각형 건물을 살짝 비틀어 곡선을 만들고, 그 곡선이 흘러내리듯 땅으로 내려오는 구조. 야드리치 교수가 처음 그려낸 단순하면서도 상징적인 아이디어는 설계부터 공사 완료까지 약 6년에 걸쳐 현실이 되었다. 건물은 카메라 조리개가 회전하는 순간을 닮았다. 바라보는 각도와 빛의 방향에 따라서도 조금씩 다른 인상을 준다. 직선과 곡선이 만나는 지점에서는 그림자의 흐름과 함께 건물의 역동성이 느껴진다. 특히 바닥 쪽이 살짝 들린 듯한 구조 덕분에 건물은 땅에 내려앉는 듯한 묵직함과 동시에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묘한 긴장을 품고 있다.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완성된 이 미술관은 사진이라는 매체가 품은 본질에 깊이 다가가고자 한다. 야드리치 교수는 자신의 에세이 《프로젝트와 오브제: 세상 어떤 건물도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에서 “건축은 무한한 시간 여행이 아니며, 미술관은 대서사시의 서두”라고 말했다. 그에게 미술관은 그 자체로 완성된 무언가가 아닌, 이야기가 시작되는 장소라는 것. 윤근주 소장도 같은 생각을 전한다. “건물은 완공되는 순간 끝나는 것이 아니다. 건물에 생명을 부여하는 것은 큐레이터가 만들어가는 전시이며, 결국 미술관을 기억하게 하는 것은 관람객의 경험이다”라고. 그 말처럼,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은 한국 사진 역사의 흐름을 보여주는 〈광채: 시작의 순간들〉과 동시대 사진작가들의 시선을 담은 〈스토리지 스토리〉, 2개의 특별전으로 첫 장면을 열고 있다. 건축이 오롯이 사진만을 위한 무대를 만들었다면, 이제부터는 그 안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공간을 채워나갈 차례다. 사진이 기록하는 빛의 시간들이 이곳에서 어떤 이야기로 이어질지 기대가 모인다.

 1. 조우에서 비롯한 곡선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은 서울로봇인공지능과학관(이하 로봇과학관)과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미술관이 설계 공모에 들어가기 전, 이미 로봇과학관의 설계안이 확정된 상태였다고. 서로 다른 목적을 지닌 두 공공건물이 나란히 들어서야 했기 때문에 사진미술관은 주변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고유의 존재감을 드러내야 했다. 특히 타원형으로 건축될 예정인 로봇과학관과의 유기적인 관계 설정이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윤근주 소장과 야드리치 교수는 일반적으로 사각형으로 설계되는 미술관이 곡선의 건물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수 있을지를 고민했고, 로봇과학관의 곡선형 실루엣을 ‘외부로부터의 밀어냄’이라는 개념으로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각형의 건물을 비틀고 휘어지듯 만들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선이 옆 건물의 곡선에 의해 밀려난 듯한 형상을 완성했다.

 

2. 건축의 결에 따라 놓인 작품들
건물 외피의 밀어내고 들어가는 비정형적 형태는 건물 내부에도 반영되었다. 이 구조는 철판을 휘어 만든 거푸집 안에 콘크리트를 직접 부어서 구현한 것으로, 1층 로비와 2층 전시장 벽면 곳곳에도 왜곡된 윤곽이 그대로 드러나며 건물 외부와 내부가 같은 결로 이어진다. 외관에서 느껴지는 질감과 색감이 실내에서도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비슷한 색으로 마감했다. 동시대 사진작가들의 다채로운 시선을 보여주는 전시 〈스토리지 스토리〉에서는, 이렇게 굴곡진 벽면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작품을 설치했다. 서동신 작가는 구부러진 벽면 위에 사진 작업을 설치했고, 원성원 작가와 권지연 조경가는 전시 공간 안에 생긴 언덕을 활용해 숲의 풍경을 선보였다.

 

3.  공간에서 시선을 여는 방법
공간을 체험하는 방식 역시 세심하게 고려했다. 출입구는 의도적으로 2.4m의 평범한 높이로 설계됐다. 관람객은 입구를 지나 건물 안으로 들어서며, 10m에 이르는 높은 천장과 마주하게 된다. 이처럼 일상적인 높이의 공간에서 탁 트인 공간으로 나아가는 순간, 시야가 확장되며 공간이 열리는 감각을 자연스럽게 체험할 수 있다. 2층에 자리한 기획 전시장에서는 1층 로비를 내려다볼 수 있도록 설계해, 전시를 감상하는 동안에도 다른 공간과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유지할 수 있다. 윤근주 소장은, 이 미술관이 단지 전시를 위한 장소에 머무르지 않고 작가들이 새로운 영감을 받아 작품을 시작할 수 있는 살아 있는 공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설계했다고 말했다.

 

4. 빛이 머무는 중정
외부에서 보면 창이 보이지 않는 이 미술관에서 햇빛이 가장 풍부하게 들어오는 공간은 4층의 야외 중정이다. 미술관의 프로그램과 방향성을 중시하는 윤근주 소장과 야드리치 교수는 전시를 기획하는 사람들이 잠시 머물며 생각을 환기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고 여겼다. 중정은 그런 마음에서 마련되었고, 큐레이터들은 자연광이 드는 공간에서 식사를 하거나 담소를 나누며 사고를 펼쳐나갈 수 있다. 현재 중정은 미술관 관계자들에게만 개방되어 있으며, 일반 시민은 출입이 어렵다.

 

5. 루버로 만든 빛의 흐름
윤근주 소장은 이 미술관을 ‘공예적’으로 완성했다고 표현한다. 건축이 여전히 수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야만 완성되는 일이라는 점에서다.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의 공사에는 누적 1만9000명이 넘는 인원이 참여했고, 그 손끝에서 건축물이 완성됐다. 외벽을 감싸는 콘크리트 루버와 철제 네트도 모두 한 조각씩 직접 도면을 그리고 제작하는 수공예적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시각적인 장치이자 건물을 구성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콘크리트 루버. 여러 차례의 시행착오 끝에 주차 타워에 사용되는 짙은 회색의 베이스 패널을 재료로 선택했다. 안정적으로 건물의 수평성을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루버는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되어 건물에 규칙적인 흐름을 만들어내고, 그 사이사이 덧댄 철제 네트는 틈을 만들어 빛의 흐름을 유도한다.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그림자의 방향과 밀도를 통해 건물은 매 순간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이 루버는 사람을 위한 구조이기도 하다. 땅과 맞닿는 부분은 추후 계단으로도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는데, 지금은 화단으로 쓰이며 풍경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다.


CREDIT INFO

editor    신문경
photographer    김연제
취재 협조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02–2124–7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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