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업은행, KDB생명 자본잠식 해소 위해 유상증자 지원
하락한 신용등급 회복 불투명, 매각 등 각종 대안도 실패
자칫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우려···정상화 여전히 요원
현 경영진 책임론 불가피···정권 교체로 새 수장 내정 통해 경영 쇄신 전망
[시사저널e=김태영 기자] 한국산업은행이 KDB생명 자본잠식 해소를 위해 유상증자를 지원하기로 했지만 당장 하락한 신용등급을 회복하기에는 어려운데다, 이미 수 차례 매각을 포함해 각종 대안들이 실패를 거둔 만큼 정상화의 길은 요원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KDB생명 사장직 특성상 정권의 영향을 많이 받는 만큼, 친윤 인사로 분류되던 수장을 중심으로 리더십 교체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현재 KDB생명에 유상증자를 위한 실사를 진행 중이다. 자본잠식을 해결하고 감독 기준을 크게 밑도는 건전성 비율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KDB생명 공시를 살펴보면 지난 1분기 기준 KDB생명의 실질 자기자본은 -1348억원으로자본잠식률은 127%를 기록했다. 부채총계(17조9888억원)가 자산총계(17조1489억원)를 넘어섰다.
특히 회계상 자본으로 분류되지만 실질적으로는 부채인 신종자본증권 2402억원을 제외할 경우 자본총계는 -3750억원이다. 이 기준으로 환산한 자본잠식률은 175%에 육박한다.
건전성 지표도 악화됐다. KDB생명의 올해 1분기 기준 지급여력제도(K-ICS, 킥스) 비율은 40.6%(경과조치 적용 전)로 업계 최하위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지급여력제도 비율이란 보험회사가 예상치 못한 손실을 보더라도 가입자에게 보험금을 제때 지급할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가용자본(지급여력금액)을 요구자본(지급여력기준금액)으로 나눈 비율을 의미한다.
통상적으로 지급여력제도 비율은 보험사의 자본 건정성을 가늠하는 중요 지표로 활용된다. 지급여력제도 비율이 높을수록 보험사가 보험금을 문제없이 지급할 수 있는 능력이 높은 것이다. 앞서 금융당국은 지급여력제도 비율 기준을 150%에서 130%로 완화했지만, 이와 관계없이 KDB생명의 지급여력제도 비율은 기준에 훨씬 못 미치는 상황이다.
앞서 한국기업평가는 KDB생명의 후순위채 신용등급을 기존 A+(부정적)에서 A(안정적)로 하향했다. 한국기업평가는 "영업 기반 안정성 저하, 열위한 수익성 지속, 자본적정성 열위 등이 등급 하향 사유"라고 설명했다.
모회사인 산업은행이 최근 대규모 유상증자를 계획하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적기가 지났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산업은행이 지난 2010년 KDB생명을 인수한 이후 약 1조5000억원 규모의 공적자금을 투입했지만 경영 정상화에 실패했던 만큼, 추가 자금 지원과 관련해 무용론이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도 언급되고 있지만 현재까지 지원한 사례가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지원을 한다고 해도 KDB생명 신용등급이 당장 회복하기에는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시장에서는 무작정 증자만 하면 자칫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매각 역시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산업은행은 그 동안 KDB생명 매각을 여섯 차례 이상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지난 2023년 KDB생명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던 하나금융지주는 두 달 간의 실사까지 진행했지만 결국 인수를 포기했다.
회사의 상황이 악화일로로 치달으면서 업계에서는 현 경영진의 책임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2023년 구원투수로 등판한 임승태 KDB생명 사장은 보험상품 포트폴리오 개편 및 자본확충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으나 결국 경영정상화와 매각 모두 실패했다.
특히 KDB생명 사장직은 한국산업은행이 대주주인 만큼 정치권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산업은행이 공공기관이라는 특성을 고려하면 KDB생명 사장도 정치권 영향을 일정부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현재 임 사장도 지난 20대 대선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 선거캠프에서 경제특보로 활동하며 금융 공약을 설계한 친윤 인사로 분류된다.
이 때문에 새 정부 출범 후 차기 한국산업은행 회장 인선이 정해지면 KDB생명 리더십 교체가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가 유지되는 기간 임 사장을 내정했기 때문에 이번 정권 교체로 임승태 사장이 물러날 가능성이 적지 않다"며 "새 정부가 출범한 만큼 새로운 수장을 내세워 경영 쇄신에 나설 공산이 크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