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홍콩국제협약(HKC) 발효
단기적으론 선박 재활용 시설 부족
노후선 해체 지연에 공급 과잉 우려도
"중장기로 보면 중고선 잔존량 줄어"

HD현대중공업이 건조한 컨테이너선. / 사진=HD현대
HD현대중공업이 건조한 컨테이너선. / 사진=HD현대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홍콩국제협약(HKC)이 발효되면서 향후 10년간 1만6000척, 약 7억DWT(재화중량톤수) 규모의 선박이 시장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이는 지난 10년간 실제 해체된 선박의 2~3배에 이르는 수치다.

해체 절차 강화와 동시에 대규모 해체가 예고되면서 중고선 시장과 선가 흐름도 새 국면을 맞이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단기적으로는 해체 지연에 따른 공급 증가가 선가 하락 압력을 높일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친환경 규제에 따라 선박 가격이 우상향할 것이란 분석이다.

세계 최대 해운 선주 단체인 발틱국제해운동맹(BIMCO)는 최근 “HKC 발효 영향을 반영해 향후 10년간 해체 가능 선박 수를 기존 1만5000척에서 1만6000척으로 상향 조정했다”고 밝혔다. 중량 기준으로는 7억DWT로, 지난 10년간 해체된 8000척(약 2억5000만DWT)의 약 세 배 수준이다.

BIMCO는 2000~2019년 동안 선종별 해체 비율을 기준 삼아 예상 해체 가능 선박수를 산출했다. 예컨대 20년 이상 된 케이프사이즈 벌크선이 과거 평균 10% 해체됐다면, 앞으로도 비슷한 비율이 유지될 것으로 본 것이다.

HKC의 핵심은 해체 과정의 안전성을 보장하는 데 있다. 500톤(t)급 이상 선박을 해체하려면 반드시 위험물질목록(IHM), 선박재활용계획(SRP), 재활용승인서(DASR) 등을 제출하고 인증 선박 재활용 시설(SRF)에서만 해체해야 한다.

문제는 인증받은 선박 재활용 시설이 아직 부족하다는 점이다. 인도가 100곳 이상 인증을 받은 것을 제외하면, 방글라데시(약 10곳), 파키스탄(4~7곳), 터키 등은 아직 초기 단계에 있다. 한국도 8월쯤 IMO에 협약 가입서를 제출할 예정이지만 실제 제도화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선사들이 해체를 미루고 노후선을 장기간 운용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수익이 나는 한 노후선의 해체를 미루려는 유인이 더 커졌다”며 “중고선 시장에 더 많은 선박이 남게 되면 공급과잉 우려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해체 지연은 중고선가에 하방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20년 이상 선령의 벌크선이나 유조선은 그간 높은 해체 수요로 발주량이 유지됐지만, HKC 발효를 이후로 노후 선박들이 시장에 더 오래 머무를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HKC 인증을 받은 선박 재활용 시설 수가 증가하고, 해체 처리 속도가 높아지면 중고선 잔존량이 줄어드는 구조가 나타날 수 있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 선박 공급이 자연스럽게 감소하면서 선가 상승 압력이 작용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중고선 시장 역시 큰 변화를 앞두고 있다. 그동안 중고선가는 주로 운임지수와 금리에 따라 움직여왔다. 그러나 앞으로는 규제 요건 충족 여부가 중고선가를 결정하는 새로운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BIMCO는 “시장 여건에 따라 실제 해체 수는 줄어들 수도, 더 많아질 수도 있다”면서도 “과거보다 확실히 높은 수준의 해체량이 예고된 만큼 선박 공급 구조에 변화를 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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