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교육감 “7세 고시는 아이 정상 발달 넘는 일종의 범죄행위”
전문가 “발달과정 무시한 선행, 도덕적 가치 문제 넘어 뇌 발달의 실질적 손해”
[시사저널e=노경은 기자]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사교육비는 29조2000억원으로 직전해 대비 7.7% 증가하면서 4년 연속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초·중·고 전체 학생 수는 전년보다 8만명 감소했으나 사교육비는 되레 증가한 것이다. 1인당 월평균 지출액은 물론 참여율, 참여 시간도 모두 늘어난 영향이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학교급별 사교육비 총액이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초등학교는 13조2000억원, 중학교 7조8000억원, 고등학교 8조1000억원으로 초등생 사교육비용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시도별로 보면 전체 학생 기준 서울의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가 가장 높았고, 서울의 사교육 참여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78만2000원이었다.
사교육을 통한 선행학습은 대치동을 넘어 전국구가 된 지 오래다. 특히 2달가량의 겨울방학 취지는 추운 겨울 잠시 학업을 멈추고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을 갖기 위한 것이지만, 요즘 학생들에게는 방학특강을 듣고 선행 진도를 빼기 좋은 시기로 인식되기도 한다. 고등 수학 상,하의 난이도가 높다 보니 중등수학까지 빨리 진도를 마치고 고등수학을 반복해야 해서다.
일부 뛰어난 아이들은 초등 고학년 학생이 초등 의대반 학원을 다니거나, 선행 진도가 맞는 우수 학생끼리 팀을 짜서 고액 과외 선생님을 섭외해 고등수학을 공부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더라도 대치동에서는 일반적으로 초등 저학년까지 초등수학을 마치고 늦어도 초등 졸업할 때까지 중등수학 진도를 마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아이의 발달과정을 무시한 선행이 성공의 정답이 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한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이자 교육학 박사는 “수학을 잘하기 위해서는 전두엽과 두정엽의 발달이 필요한데, 선행학습시 이해가 아닌 암기를 하게 된다. 암기를 발달시키는 부분은 측두엽이다. 이처럼 적기에 맞지 않는 공부를 하는 것은 의도하지 않은 뇌의 부분을 과도하게 쓰게 만들고 손상위험을 높인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사교육을 통한 나이에 맞지 않는 선행은 도덕적 가치의 문제가 아닌 뇌 발달의 실질적 손해”라고 덧붙였다.
이 부분에 대해 공교육계에서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해법 모색에 적극적이다. 지난 18일 서울시교육청은 사교육 경감 프로젝트를 위한 토론을 열었다. 정근식 서울시 교육감은 이 자리에서 “학생들이 제대로 학습 능력을 갖추기 전에 무리한 사교육 압박이 오면 정상적인 발전을 가로막는다”며 “4세 고시, 7세 고시가 어린이들의 정상발달을 막는 일종의 범죄행위라는 주장도 나온다"고 말했다.
영유아들을 포함한 과도한 사교육을 줄이기 위해 근본적인 제한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이덕난 국회입법조사처 교육문화팀장(대한교육법학회 고문, 전 회장)은 앞으로는 학원 교습 시간을 제한하는 등 '다 같이 못 하거나 덜 하는' 방향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 팀장은 “사교육에 참여하는 학부모의 심리적 측면을 고려하면 다 같이 못하거나 덜 하는 방향의 전환이 우선돼야 한다”며 “학원 교습 시간 제한, 인센티브 부여 등을 통한 방과 후 학교 질·참여율 제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학원 교습시간 제한은 학생 건강 등 목적의 정당성이 있으며 법률적 근거를 마련해 본질적인 침해가 안 되는 범위 내에서 추진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그가 말한 한국교육개발원(KEDI)의 교육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학부모들이 사교육을 시키는 이유로 ‘남들이 하니까 심리적으로 불안해서’(21.8%), ‘학교에서보다 더 공부시키려고(20.0%)’, ‘남들보다 앞서나가게 하려고’(18.4%) 등이 꼽혔다.
제도적 마련은 물론이고 학부모 개개인이 사교육을 통한 선행 목적을 제고해 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수도권 4년제 한 사회학과 교수는 “정보가 홍수처럼 밀려드는 시대에 자극적이고 타깃팅된 정보는 손쉽게 구할 수 있고 우리 앞에 저절로 펼쳐지는 반면, 진짜 정보는 스스로 구하려 할때만 얻어진다”며 “사교육을 통한 선행이 필요한 이유도 모른 채 하게 되는 거라면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하게 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건 곧 사회적 분위기가 된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