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 "삼성화재 주식 지분법 적용" 지적 수용 안 해
"금감원, 충분한 검토 없이 삼성생명 입장 인정" 놓고 ‘봐주기’ 의혹 제기
기존 회계 감독 방향과 배치될 가능성···"혼란 더 키워"
[시사저널e=유길연 기자] 삼성생명이 자회사로 편입한 삼성화재 지분에 대한 회계처리가 적절치 않다는 논란이 다시 불거지자 혼란의 책임이 금융감독원에 있단 지적이 나온다. 지난 2월 논란이 처음 발생할 당시 회계사들 간 이견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금감원이 손쉽게 삼성생명의 입장을 들어줬단 비판이다.
◇ '지분법' 논란 일자마자 삼성생명 손 들어준 금감원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삼성생명은 올해 삼성화재를 법률 상 자회사로 편입했다. 삼성생명은 삼성화재의 지분 15%를 보유하고 있는데, 자회사로 포함시키면서 15% 이상을 보유할 수 있게 됐다. 이로 인해 회계 처리 관련 논란이 일었다. 이 문제가 거론되기 시작한 지난 2월 일부 회계사들이 회계기준에 따라 삼성생명은 회계 상 삼성화재를 관계기업으로 분류하고 보유 주식에 대해 지분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논란에도 불구하고 삼성생명은 지분법 회계 처리를 하지 않았다. 2월 열린 실적발표회에서 지분법 처리를 하지 않은 이유로 “삼성화재 지분율이 20%를 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삼성생명은 삼성화재 지분을 추가로 매입할 계획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향후에도 삼성화재를 관계기업으로 분류하지 않겠단 의미다.
그런데 최근 삼성생명이 재무적인 손실을 우려해 지분법 처리를 하지 않았단 분석이 나오면서 논란이 다시 일었다. 삼성생명은 과거 유배당보험 판매로 확보한 자금으로 삼성화재 지분을 사들였는데, 지분법을 적용하면 삼성생명은 삼성화재가 거둔 이익 가운데 지분율에 해당하는 규모를 유배당 계약자에게 모두 나눠줘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추가로 반영해야 할 보험부채 규모도 커질 수 있단 예상이다.
일각에선 이러한 혼란을 키운 것은 금감원이란 지적이 나온다. 당시 금감원 수장이었던 이복현 전 원장은 논란이 불거진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분율이 20%에 미치지 않는 이상 지분법 적용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회계적인 측면에서도 효과나 차이가 없다”고 했다.
기업 회계에 대한 감독 권한이 있는 금감원이 당시 너무 쉽게 삼성생명의 손을 들어준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가능한 대목이다. 현행 기준 상 분명 이견이 있을 만한 문제인데 충분한 검토 없이 논란을 마무리 지으려 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삼성생명 봐주기’ 아니냔 의혹도 제기된다. 특히 이 전 원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 회계 혐의에 대한 기소를 주도한 인물이기에 의아하단 반응이다.
◇ 삼성생명 출신이 삼성화재 대표도 맡는데…금감원 판단 ‘의문’
금감원의 이번 판단은 과거 진행한 회계 감독 방침과도 배치될 가능성이 있다. 국제회계기준(IFRS)은 A회사가 보유한 B회사의 지분에 대한 지분법 회계를 적용하는 것은 A회사가 B회사에 대한 ‘유의적인 영향력’을 가질 때 가능하다고 규정한다. 과거엔 A회사가 B회사의 지분을 20% 이상 보유하면 해당 주식에 대해선 지분법 회계를 적용해야 한다고 했다. 객관적인 분류법에서 주관적인 척도로 바뀐 셈이다.
A회사가 B회사의 지분을 20% 이상을 보유하고 있으면 현행 기준 안에서도 논란의 여지 없이 지분법으로 회계 처리를 해야 한다. 문제는 지분율이 20% 미만일 때다. 지분율이 낮더라도 B회사의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판단할 만한 사실이 있으면 지분법 회계를 도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유의미한 영향력’이란 다소 모호한 기준으로,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 제1028호엔 구체적인 판단 근거가 제시돼 있다. 해당 조항엔 ▲A회사가 B회사의 이사회나 이에 준하는 의사결정기구에 참여하거나 ▲두 기업 사이에 경영진의 교류가 있다면 A회사가 B회사에 대한 유의미한 영향력이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단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를 근거로 금감원은 지분법 회계를 제대로 적용하지 않은 기업에 대해 지적했고, 해당 사례를 2021년 보도자료를 통해 설명하기도 했다.
이러한 금감원이 제시한 기준에 따르면 삼성생명이 삼성화재 주식에 대해 지분법 회계를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가능하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의 임원 인사는 보통 삼성 그룹 차원에서 동시에 이뤄지며, 임원진이 두 회사를 오가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현재 삼성생명를 책임지고 있는 홍원학 대표도 삼성생명에서 부사장까지 오른 이후 2021년에 삼성화재 대표를 맡은 바 있다.
더구나 두 기업은 서로 협력해 사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2022년 삼성생명·화재는 해외 대체투자를 적극적으로 확대하기 위해 블랙스톤과 6억5000달러 규모의 펀드 투자 약정을 공동으로 체결한 바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삼성생명이 보유한 계열사 주식은 회사 자본 문제와 함께 그룹 전체 지배구조와 관련된 문제이기에 논란이 커지는 경향이 있다”라면서 “이에 금융당국도 신중한 판단이 필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