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혜자의 냉소적 태도와 모순···정치 언어가 정책 본질 흐려
내수경제를 살리는 작은 물줄기···필요성·실효성 질문 계속해야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이재명 정부가 또 돈 뿌린대.”

점심시간, 단골 식당에서 흘러나오던 뉴스 소리. 식당 주인은 티비를 힐끔 보더니, 주방을 정리하던 손을 멈추고 한마디 던졌다. “일 안 하고 노는 사람들한테 또 현금살포야. 그러니까 나라가 이 모양이지.”

거친 그의 말보다 더 인상 깊었던 건 직후에 터져 나온 한숨이었다.

“요즘엔 손님이 진짜 없어. 최저임금 때문에 아르바이트 쓰기도 힘들어. 차라리 문을 닫는 게 낫겠어.” 그 말 끝에 따라붙은 헛웃음은 냉소였고, 절망이었다.

‘현금살포’라고 단정하면서도, 그의 하루는 손님 한 팀 더 오는 것을 간절히 바라는 생존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그 ‘한 팀’이 전국민 지원금을 받아 식당에 들어올 거라는 사실은 모른 채였다.

◇누가 돈을 받는가, 그리고 누가 그 효과를 누리는가

전국민 지원금은 정부가 단기적으로 민간 소비를 부양하기 위한 수단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코로나19 시기 지급된 전국민 재난지원금이 소비 진작에 실질적 효과를 냈다고 분석했다. 2020년 1차 지급 당시 카드 사용 가능 업종에서 매출이 약 4조원 증가해, 정부 투입 예산의 26.2~36.1%가 소비로 이어졌다는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정부가 지급한 1만원이 최소 1만2620원에서 최대 1만3610원의 추가 소비로 이어졌다는 의미다.

소득 하위 계층은 한계소비성향이 높아, 이보다 더 큰 소비 효과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은 여러 실증 연구에서 반복 확인된다. 재난지원금은 단순히 나눠준 돈이 아니라, 멈춰선 내수경제를 다시 굴리기 위한 마중물이었던 셈이다.

가장 직접적으로 효과를 누리는 건 식당, 마트, 병원, 미용실, 학원 같은 생활 밀착형 자영업자들이다. 그들이 말하는 “요즘 손님이 없다”는 바로 그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지원금은 설계된다. 그런데 정작 그들이 “현금살포”라고 비난한다. 정책의 효과는 자신에게 오는데, 그 정책은 다른 누군가를 위한 것이라 생각한다.

지원금은 “노는 사람에게나 주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는 소비 여력이 없는 사람에게 주어져 그 소비가 다시 시장으로 되돌아오는 구조다. 결국 그 흐름이 닿는 곳이 식당이고, 자영업자다. 그 혜택을 본인이 받는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채 말이다.

◇정책보다 ‘프레임’이 앞서는 사회···단어가 맥락 삭제해

현금으로 지원하는 정책은 ‘살포’가 아니다. 정책은 목표와 구조, 집행 방식을 중심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그러나 ‘현금살포’라는 말은 모든 맥락을 삭제한다.

언론과 정치권은 이 단어를 무책임하게 반복해 왔다. ‘복지’와 ‘선심’, ‘경기 부양’과 ‘매표’를 구분하지 않는다. 정책의 실효성이나 대상의 적정성은 사라지고, 오직 ‘정치적 냄새’만 남는다. 정책의 정당성을 무너뜨리는 가장 빠른 방법은, 그 정책을 조롱하는 단어 하나를 퍼뜨리는 일이다. ‘현금살포’는 그런 단어다.

물론, 지원금이 모든 문제의 해답이 아니다. 지속 가능하지도 않고, 한 번의 지급으로 경제를 되살릴 수도 없다. 하지만 정책을 멈춰 세울 이유가 되진 않는다.

‘노는 사람에게 돈 준다’는 인식은,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감정의 표출이다. 지금처럼 내수가 얼어붙은 시기에는 정책의 수혜자와 공급자가 분리되지 않는다. 받은 사람이 쓰고, 쓴 돈이 식당에 도달한다. 그리고 식당 주인은 “요즘 진짜 장사 안 된다”고 말한다. 그가 모르는 건, 그의 매출을 만드는 소비가 바로 자신이 비판한 그 지원금에서 나올 거라는 점이다.

전국민 지원금은 정치가 아니라 정책이다. 프레임이 그 정책의 가치를 가리게 해서는 안 된다. 냉소와 피로 속에서도 우리는 계속 질문해야 한다.

정말 문제는 ‘돈을 주느냐’인가, 아니면 ‘왜 주는지를 묻지 않는 태도’인지.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