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실트론 29.4% 잔여지분 취득 놓고 공정위와 공방
서울고법 “사업기회 제공 확장해석 불가”···SK·최태원 손 들어줘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SK그룹이 SK실트론 인수 과정에서 최태원 그룹 회장에게 부당한 사업기회를 제공했는지를 가리는 행정재판 대법원 판단이 오는 26일 나온다.
이번 사건은 지주회사 또는 계열사가 포기한 사업기회를 동일인(총수 개인)이 가져갔을 때 ‘기업의 경영상 판단’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 중요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특별2부는 오는 26일 SK(주)와 최 회장이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시정명령 및 과징금 부과 처분 취소 소송 상고심 판결을 선고한다.
◇공정위 “SK, 총수에 부당한 이익 제공”···시정명령, 과징금 16억 부과
이 소송은 공정위가 2022년 3월 SK와 최 회장에게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 제공’을 이유로 시정명령과 총 16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데 대해, SK 측이 이를 취소해달라고 제기한 것이다.
SK는 2017년 1월 기업인수 목적으로 LG로부터 옛 LG실트론(현 SK실트론) 지분 51%를 약 6200억원에 취득했다. 이후 같은 해 4월 초 나머지 49% 중에서 KTB가 보유한 19.6%의 지분만 TRS 거래를 통해 취득했고, 우리은행이 보유한 29.4% 지분에 대한 공개경쟁입찰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경영권이 없는 잔여지분 29.4%는 같은 해 최태원 회장에게 낙찰됐다.
공정위는 SK가 잔여지분 29.4%를 취득할 경우 회사에 상당한 이익이 될 수 있음에도 이를 합리적 사유 없이 포기하고, 최태원 회장이 이를 취득할 수 있도록 직·간접적으로 지원했다고 봤다. 이는 공정거래법 제23조의2 제1항 제2호 위반에 해당한다고 봤다.
또한, 공정위는 SK가 입찰에 불참한 것이 부당한 사업기회 제공 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점을 최 회장이 인식했음에도 이를 취득했다며, 제3항 및 제4항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공정위는 SK와 최 회장에게 각 8억원씩 총 16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시정명령을 내렸다.
공정위 처분에 SK는 경영상 판단에 따라 29.4%의 지분 취득을 포기했을 뿐이라며 불복 행정소송을 냈다. 이미 LG실트론 지분 71%를 확보해 경영권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었고, 추가 매입의 경제성·전략적 가치가 낮다고 판단했다는 것이 SK 측의 주장이다.
◇서울고법 “잔여지분 입찰 포기, 사업기회 제공으로 보기 어려워”
서울고법은 지난해 1월 SK와 최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처분의 전제인 ‘사업기회 제공행위’ 자체가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봤다. 공정위의 시정조치, 과징금부과 등에 대한 행정소송은 2심제(고등법원→대법원)로 운영된다.
재판부는 우리은행이 보유했던 29.4%의 지분을 SK가 보유했다거나 그에 대한 처분 권한을 갖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고 전제하고는, 잔여지분에 대한 SK의 처분 권한이 없다는 점에서 사업기회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잔여지분 29.4% 입찰 포기가 ‘소극적 방식의 사업기회 제공행위’라는 공정위의 판단과 배치된다.
재판부는 “사업기회 제공행위에 대한 해석은 문언의 통상적인 의미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 행정법규는 엄격하게 해석·적용되어야 하고 행정처분의 상대방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지나치게 확장해석하거나 유추해석해서는 안 된다”라고 전제하면서 “SK가 최태원에게 사업기회를 제공한 행위를 했다고 보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라고 결론 내렸다.
또한 재판부는 SK가 이미 LG실트론 지분 71%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추가 매입의 경제성·전략적 가치가 낮다고 판단해 잔여지분 입찰에 불참했을 뿐, 최 회장에게 잔여지분을 취득할 사업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불인수 결정을 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공정위는 비서실과 재무팀·법무담당 임원 등이 잔여지분 취득에 관여했다는 점을 지적했으나, 서울고법 재판부는 그 시기와 경위, 내용을 종합할 때 사업기회 제공을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공정위는 상고했고 사건은 대법원으로 넘어갔다. 대법원은 약 1년4개월 심리 끝에 오는 26일 최종 판단을 내린다.
한편 시민단체가 최 회장을 고발한 형사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됐다. 현행법상 공정거래법 위반 사건은 공정위의 고발이 있어야만 검찰이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전속고발제 대상이다.
공정위는 SK와 최 회장을 제재하면서도 최 회장이 사업기회 제공을 지시했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없고, 지배주주의 소수지분 취득에 사업기회 조항을 적용한 법원 판례나 공정위의 선례가 없다는 점 등을 고려해 최 회장을 고발하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