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권 깡으로 현금 마련해 국회의원 쪼개기 후원한 혐의
정치자금법 위반·업무상 횡령 기소···2심서 횡령 부분 무죄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상품권 깡’ 방식으로 부외자금(장부에 기록되지 않는 자금)을 조성해 국회의원 99명에게 쪼개기 후원(작은 금액으로 여러 차례 후원하는 방식)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구현모 전 KT 대표이사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이번 주 선고된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형사1부(주심 신숙희 대법관)는 오는 12일 오전 구 전 대표를 포함한 10인의 업무상 횡령 혐의 상고심 판결을 선고한다.
이들은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상품권 할인 방식을 통해 약 11억5000만원의 부외자금을 조성하고, 이를 100만~300만원씩 나누어 여야 국회의원 99명에게 불법 후원한 혐의로 2021년 11월 기소됐다.
검찰에 따르면 KT 임직원들은 상품권을 구매한 후 이를 다시 현금화하는 방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했으며, 구 전 대표는 대관 부서에 본인 명의를 빌려주는 방식으로 국회의원 13명의 후원회에 총 1400만원을 기부한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은 공직선거법 규정에 따라 구 전 대표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와 업무상 횡령 혐의로 분리해 각각 약식기소했다. 약식기소는 피의자를 정식 재판에 넘기지 않고 서면 심리를 통해 벌금형을 청구하는 절차다. 그러나 구 전 대표가 약식명령에 불복하면서 정식 재판이 진행됐다.
1심에서는 두 혐의 모두 유죄 판결이 선고됐지만, 2심(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5-2부, 재판장 김용중)에서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해 유죄(벌금 700만원) 판결이, 업무상 횡령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 판결이 각각 선고됐다.
2심은 횡령 시점에 대한 검찰의 기소가 잘못됐다고 봤다. 검찰은 피고인들이 기부금을 ‘송금(사용)’한 시점을 횡령으로 기소했는데, 재판부는 부외자금이 ‘조성’된 시기를 횡령이 이뤄진 시점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자금이 회사 밖으로 조성된 시점과 그 자금이 실제로 회사 자금으로서 부적절하게 사용된 시점이 다르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또한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부외자금을 조성한 임원들과 범행을 공모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결론지었다. 부외자금이 마련되는 과정과 그 이후 지급되는 과정이 분리돼 있고, 피고인들이 기능적 행위지배를 하지 않았다는 판단이다.
검찰은 업무상 횡령 혐의를 무죄로 본 것이 법리오해라고 주장하며 대법원에 상고했다. 유죄가 선고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는 요건이 충족되지 않아 상고하지 않았다. 양형부당을 이유로 한 상고는 원칙적으로 상고 사유가 되지 않는다. 사형, 무기, 10년 이상의 징역형이나 금고가 선고된 경우에 한해 양형부당 상고이유로 주장할 수 있다.
‘쪼개기 후원’ 의혹은 구 전 대표가 KT 커스터머부원장 겸 최고경영자(CEO)이던 2018년 처음 제기됐다. KT새노조가 사건을 경찰청에 고발한 이후 2023년 1심 판결까지 5년이 걸렸다. 수사가 진행되던 2020년 3월 KT 대표이사 사장으로 공식 취임했다. 3년의 임기 만료를 앞두고 2022년 12월 대표이사 후보 심사위원회의 ‘연임 적격’ 판단을 받았으나, 2023년 3월 말 일신상의 사유로 사퇴의사를 밝히고 사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