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상표권 출원하며 ‘정통 시공사’ 주장
“‘압구정=현대’ 인식 활용, 감성 마케팅 전략”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압구정2구역 재건축 시공사 선정을 앞두고 ‘터줏대감’ 논쟁이 불붙고 있다. 현대건설이 ‘압구정 현대’ 상표권을 출원하는 등 정통성 계승을 주장하고 나서면서다. 하지만 과거 압구정현대 시공 상당 부분을 HDC현대산업개발이 맡았다는 점에서 이러한 주장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28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현대건설은 최근 ‘압구정 현대’, ‘압구정 現代’, ‘압구정 현대아파트’ 등 네 건의 상표를 특허청에 출원했다. 상표권 등록을 통해 단지명이 무단 사용되는 것을 막고 조합이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입장도 내놨다. 아울러 자신들이 압구정 재건축을 이끌 ‘정통 시공사’임을 강조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압구정현대는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시대와 정신의 상징”이라며 “우리가 이 가치를 계승할 수 있는 유일한 기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업계에선 압구정현대를 현대건설이 모두 지은 게 아닌 만큼 정통 시공사로 내세우기엔 다소 무리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질적인 시공 주체는 HDC현산이라는 지적이다.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1976년부터 1987년까지 총 14개 단지(1~14차)로 조성됐다. 이 가운데 1~3차는 현대건설이 조성을 맡았고, 4~14차는 현대건설 주택사업부에서 분리돼 설립된 ‘한국도시개발’이 사업을 주도했다. 1986년 한국도시개발은 토목이 주력인 한라건설을 합병하면서 사명을 ‘현대산업개발’로 변경했다. 현대산업개발은 1999년 ‘왕자의 난’ 이후 현대그룹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왔다. 이후 2018년 현대산업개발에서 지주사 분할되면서 HDC현대산업개발로 사명을 바꿨다. 자사 연혁에서도 1987년 압구정현대 14차 준공을 마지막으로 “압구정 현대아파트 단지 개발을 완료했다”고 명시하고 있다.

/ 그래픽=시사저널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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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관계자는 “압구정 현대아파트가 지어질 당시에는 현대건설과 한국도시개발(현 HDC현산)이 같은 그룹 소속이었지만 지금은 법적으로 완전히 다른 회사”라며 “현대건설이 정통 시공사라고 내세우는 건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현대건설의 이번 전략을 ‘감성 마케팅’이자 ‘브랜드 선점 경쟁’으로 보고 있다. 실제 시공사가 누구였는지 관계없이 현대라는 이름은 압구정현대와 함께 기억돼 왔다. 상징성이 워낙 강한 만큼, 조합원 다수가 자연스럽게 현대건설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현대건설은 이를 바탕으로 ‘우리가 지었다’는 사실보다 ‘우리가 더 어울린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데 주력하고 있다. 상표권 출원도 이런 흐름의 연장선이다. 향후 3·4·5구역 등 후속 재건축 구역에서도 브랜드 우위를 선점하려는 복합적 포석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조합 입장에선 단지의 역사성과 브랜드 이미지 모두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며 “현대건설은 조합원 인식 속에 남아 있는 ‘압구정=현대’ 공식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건설 측은 압구정현대의 정통성을 단순한 법인 명의가 아니라 실질적인 시공 주체와 조직의 연속성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당시 대부분 단지를 시공한 한국도시개발은 현대건설 주택사업부에서 분리된 조직에 불과하다”며 “당시 자본과 인력, 시공 기술은 모두 현대건설이 뒷받침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와 현재를 가장 일관되게 잇는 건설사는 결국 현대건설이다”며 “상표권 출원 역시 이런 인식 아래 진행됐다”고 덧붙였다.

압구정2구역은 압구정 재건축 추진 단지 6개 구역 중 진행 속도가 가장 빠른 ‘첫 주자’로 상징성이 크다. 기존 1900여가구가 재건축을 통해 2500가구 규모 아파트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공사비만 2조4000억원에 달한다. 시공사 선정을 위한 입찰 공고는 다음 달 18일 나온다.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이 입찰 참여를 예고한 상태다.

두 건설사는 이미 물밑 경쟁을 벌이고 있다. 삼성물산은 이달 압구정 아파트 맞은편에 브랜드 홍보관인 '압구정 S.라운지'를 개관하며 조합원 표심 잡기에 나섰다. 예전부터 압구정 재건축 사업은 현대건설이 따낼 것이란 분위기가 있었지만 삼성물산이 2023년 압구정 재건축 수주 의지를 밝히며 경쟁 구도가 형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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