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1~5월 대출잔액 10조↑···연간 목표치 83%
경기침체·시중은행 '밸류업'···대출 수요 쏠려
자본 여력 부족···새 정부 부양책도 증자 확률 높여
[시사저널e=유길연 기자] IBK기업은행이 중소기업 대출 급증으로 유상증자를 할지 관심이 모인다. 경기침체와 함께 밸류업 정책의 부정적 효과가 겹치면서 이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증가액이 벌써 올해 목표치에 다다른 것이다. 지금 속도라면 기업은행은 추가 재원을 마련해야 할 상황이다.
특히 다음달 들어서는 새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적극적인 중소기업 대출 확대 정책을 펼칠 수 있다는 점도 증자 가능성을 높이는 대목이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달 말 기준 기업은행의 올해 중소기업 대출 잔액 증가액은 약 10조원이다. 1분기 동안 6조5010억원이 늘어난데 이어 4~5월 동안 추가로 3조5000억원이 불어났다. 올해 목표로 정한 12조원의 83%를 다섯 달 만에 채운 셈이다. 이 추세대로면 다음달에 연간 계획 규모를 모두 채울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는 최근 경기침체가 길어지면서 경영이 악화된 중소기업, 소상공인들이 늘어난 데 기인한다. 더불어 대형 시중은행이 모기업인 금융지주의 밸류업 정책에 따라 중소기업 대출 공급을 줄인 점도 원인으로 꼽힌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시중은행의 올해 1분기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작년 말 대비 1조2780억원 감소했다. 3월 한 달 동안에만 1조4744억원이 빠졌다.
은행은 중소기업 대출을 줄이면 국제결제은행(BIS)자기자본비율이 개선돼 배당과 자사주매입 규모를 늘릴 수 있다. BIS비율은 은행의 자본건전성을 측정하는 지표다. 분자는 은행의 자기자본, 분모는 은행이 소유한 자산에 부실화 가능성에 따라 가중치를 매긴 위험가중자산으로 구성된다. 중소기업 대출은 부실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기에 이 대출을 늘리면 위험가중자산이 빠르게 늘어난다. BIS비율 지표 하락을 초래한다.
업계에선 기업은행이 유상증자를 할 수 있단 예상이 나온다. 기업은행은 코로나19 확산으로 글로벌 경기침체가 발생했던 지난 2020년에도 약 1조3000억원의 역대급 증자를 한 바 있다. 이를 통해 중소기업, 소상공인에 낮은 금리로 대출을 대규모로 공급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에도 기업은행은 증자를 통해 1조3000억원을 확보한 바 있다.
기업은행의 자본 여력은 대규모 대출 공급을 하기엔 충분치 않다. 지난해 3월 말 기준 BIS비율 지표 중 하나인 보통주자본비율은 11.37%을 기록했다. 다른 대형 은행 대비 3% 포인트 넘게 낮은 수준이다. 전체 대출 포트폴리오 가운데 중소기업 대출이 82.5%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5월까지 기록한 중소기업 대출 증가 추세가 유지되면 이 비율은 10%선으로 하락할 수 있다. 당국은 이 비율을 12%선으로 관리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더불어 다음달 들어서는 새 정부가 경기부양 정책을 시행할 것으로 예상되는 점도 증자 전망에 무게를 싣는 부분이다. 기업은행은 기획재정부가 전체 지분의 59.5%를 소유한 국책은행이다. 증자를 하면 기재부가 신주를 모두 사들여 기업은행에 자금을 투입하게 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대규모 소상공인 지원 정책을 약속했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도 경기회복을 위해 2차 추가경정예산안 시행을 시사했다.
다만 증자가 시행되면 기업은행의 밸류업 정책은 차질을 빚을 것으로 전망된다. 더 큰 이익을 내기 위해 진행하는 증자가 아니면 보통 신주를 발행하면 주식가치가 희석돼 주가가 떨어진다. 기업은행이 배당을 늘리더라도 주가가 많이 빠지면 주주이익 극대화 효과는 반감된다. 코로나19 사태 당시에도 기업은행의 주가는 증자 영향으로 크게 내렸다. 2019년 말 1만1800원이었던 기업은행 주가는 2020년 말 8840원으로 25% 급락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지난해 정부가 시행한 밸류업 정책의 문제점이 올해 더 선명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라면서 "기업은행은 국책은행이기에 결국엔 주주가치 극대화보단 중소기업 살리기에 더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