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I, 이달초 57달러···3개월 만에 20달러 하락
트럼프-중동 우호 관계에 저유가 흐름 지속
정유사, 차입금 상환 위해 자금마련 몸부림
[시사저널e=유호승 기자] 국제유가가 끝을 모를 정도로 하락하는 모양새다. 유가급락에도 석유수출국기구(OPEC) 등은 원유 공급량을 더욱 늘리면서 가격하락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저유가 흐름에 정유업계의 수익지표인 정제마진 역시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하면서 위기감이 커지는 중이다. 이로 인해 회사채와 신종자본증권 등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 자구책을 강구·실행하고 있다.
15일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서 6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배럴당 62.23달러에 거래를 마감했다. 3개월 전까지만 해도 70달러 안팎에서 머물던 WTI는 이달 5일 57.13달러까지 하락했다. 글로벌 원유 시장의 기준인 브렌트유도 마찬가지다. 같은날 브렌트유 가격은 66.09달러다.
WTI와 브렌트유가 60달러대를 횡보하는 이유는 OPEC의 주요 8개 산유국 협의체인 OPEC+가 이달에 이어 다음달에도 원유 생산량을 늘리겠다고 발표해서다. 저유가 상황이 계속되는 가운데에도 OPEC+가 글로벌 시장에 원유 공급량을 확대하는 이례적 증산 정책에 나선 것이다.
시장에서는 OPEC+가 무리한 원유 증산에 나선 것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서라고 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화석연료 부활 정책을 돕기 위해 저유가 흐름을 유지하는 것이란 분석이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트럼프 행정부는 국방과 AI 분야에 큰 야망을 품고 있는 OPEC의 중심 사우디아라비아를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라며 “사우디아라비아도 미국의 호의적인 제스처에 트럼프 대통령의 에너지 정책을 도와주고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3일 사우디아라비아를 시작으로 중동 순방을 시작하기도 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는 6000억달러(약 850조원)의 초대형 거래를 체결하기도 했다. 이 중 1420억달러(약 200조원)는 방산 분야로 역사상 초대 규모의 방위산업 계약이기도 하다.
미국과 중동의 협력 움직임에 저유가 흐름이 계속될 것으로 관측되면서 정제마진도 당분간 회복세를 보이기 힘들 전망이다. 올해 1분기 싱가포르 복합 정제마진은 손익분기점인 4~5달러에 머물렀다. 정유사 입장에선 원유를 정제·가공·판매해도 이익을 내기 힘든 구조인 셈이다.
국내 정유사들은 저유가 흐름이 상승세로 전환돼 정제마진이 손익분기점을 넘길 때까지 다양한 자금조달 방안을 마련해 위기를 넘기겠다는 방침이다. SK이노베이션은 최근 80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당초 4000억원을 계획했는데, 수요예측에 1조7600억원이 몰리며 증액 발행했다.
SK이노베이션은 “발행한 회사채 8000억원은 채무 상환 자금으로 대부분 활용할 예정”이라며 “올해 만기 도래하는 차입금부터 순서대로 상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GS칼텍스도 지난달 29일 1600억원 규모의 공모 회사채 발행을 마쳤다. SK이노베이션과 마찬가지로 차입금 상환에 쓸 예정이다. GS칼텍스는 지난달 28일 500억원 규모의 차입금 만기가 다가온 데 이어, 오는 7월 3억달러(약 4300억원)의 외화채 만기도 앞두고 있다.
HD현대오일뱅크는 신종자본증권 발행으로 차입금을 상환하는 중이다. 현금 창출력이 낮아질 때 기업이 실탄확보를 위해 선택하는 대표적인 방법인 신종자본증권 발행이다. 현대오일뱅크는 실적악화 및 투자지속으로 차입금이 늘어나 2020년 820억원이던 이자 비용이 2023년 3391억원으로 약 4배 많아졌다. 이자부담을 줄이기 위해 신종자본증권으로 확보한 현금을 차입금 상환에 쓰는 것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회사채 및 신종자본증권 발행으로 차입금 상환에 집중하는 것은 늘어난 빚으로 부채비율 등 재무지표가 악화돼 신용등급이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한 자구책”이라며 “지속가능항공유 등 위기상황에도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투자를 줄일 수 없는 만큼 한동안 다양한 자금확보 방안이 실행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