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첫 전수조사···치매환자 1인당 평균 자산 2억원
GDP 6.4% 규모, 관리제도 미비···사기·횡령 노출
2050년 488조원 돌파 전망···경제 순환 차단 우려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65세 이상 치매환자들이 보유한 자산이 154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총생산(GDP)의 6.4%에 이르는 규모다. 하지만 제대로 된 관리 제도가 없어 치매환자의 돈이 사기에 악용되거나 경제 흐름을 가막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6일 건강보험공단, 서울대 건강금융센터와 함께 65세 이상 치매환자들의 자산 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정부가 치매환자의 소득과 재산을 전면 조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사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 고령 치매환자는 약 124만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실제로 자산을 보유한 사람은 76만여명으로 전체의 60%를 넘는다. 이들이 가진 자산 규모만 약 154조원에 달했다. 치매환자 1인당 평균 자산은 약 2억원 수준이다.
보유 자산 가운데 대부분은 부동산이었다. 부동산은 114조원으로 전체 자산의 74%를 차지했다. 금융자산은 약 33조원으로 22%였고 근로·사업·금융소득 등은 전체 중 일부에 불과했다.
문제는 이처럼 규모가 큰 자산이 치매로 인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치매환자는 인지 능력이 떨어져 재산을 직접 운용하거나 중요한 판단을 내리는 데 어려움이 많다. 이로 인해 가족 간의 갈등, 간병인·제3자의 횡령, 사기 피해 등에 노출될 가능성도 높다.
정부도 이 같은 자산 방치가 단순한 개인 피해를 넘어 실물경제 전반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치매환자의 돈이 소비나 투자로 이어지지 못하고 묶여 있으면 경제의 선순환 구조가 끊기게 된다는 것이다. 전체 인구의 2.4%에 불과한 고령 치매환자가 우리나라 GDP의 6.4%에 해당하는 자산을 쥐고 있다는 점은 자산 편중 문제와도 연결된다.
이런 상황이 앞으로 더 심각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고령화 속도가 빠른 한국에서는 치매환자 수도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정부는 2050년 치매환자 수가 지금보다 세 배가량 늘어난 396만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이들이 보유한 자산도 488조원까지 불어나 GDP의 15.6%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이다.
늘어나는 치매머니를 안전하게 관리하거나 보호할 수 있는 제도는 여전히 부족하다. 현재 운영 중인 성년후견제도나 공공후견제도는 적용 대상이 제한적이고 절차도 까다롭다. 일부 금융사들이 치매 신탁상품을 운영하고 있지만 아직은 소수에 그친다.
주형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은 “치매환자는 자산을 스스로 지키기 어렵기 때문에 사기나 무단 사용 위험이 크다”며 “이번 조사를 통해 이 문제를 제대로 다룰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연말에 발표될 제5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에 치매머니 관리 방안을 반영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앞으로 매년 치매머니 규모와 자산 구조를 조사해 공개하고 민간신탁 제도 개선, 공공후견 확대, 공공신탁제 도입 등 다양한 보호 장치를 마련해 나갈 계획이다.
시장에서는 실효성 있는 제도화가 핵심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제도를 나열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며 “치매머니를 실제로 보호할 수 있는 촘촘한 실행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