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장크루’ 확산에 중개사들 “노쇼 방지책 필요”
“수수료도 비싼데 이중부담”···실수요자 반발 확산
정부·전문가 “사회적 공감대 없인 도입 어려워”

서울 시내 한 공인중개사사무소에 게시된 매물 정보. / 사진=연합뉴스
서울 시내 한 공인중개사사무소에 게시된 매물 정보.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공인중개사협회가 공인중개사와 함께 집을 둘러보는 ‘임장’에 돈을 받겠다고 나서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계약이 성사되지 않아도 현장 안내와 상담에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므로 최소한의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게 중개업계의 입장이다. 반면 실수요자들 사이에서는 단순히 매물을 살펴보는 데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발상 자체가 지나치다는 지적이 나온다.

6일 업계에 따르면 협회는 ‘임장 기본보수제’ 도입을 공식 검토하고 있다. 이는 고객이 중개사와 함께 현장을 둘러볼 경우 계약 여부와 관계없이 일정 비용을 지불하고 이후 실제 거래가 성사되면 중개보수에서 해당 금액을 차감하는 방식이다. 중개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간과 정보 제공에 대한 최소한의 보상을 제도화하겠다는 취지다.

임장비 논의가 본격화된 배경에는 ‘임장크루’의 확산이 있다. 최근 부동산 투자 관심이 높아지면서 실거래 목적 없이 시장 탐방이나 콘텐츠 제작, 공부 등을 위해 집을 둘러보는 수요가 크게 늘었다. 온라인 커뮤니티나 스터디 그룹을 통해 조직된 임장 모임은 주말마다 주요 재건축 지역을 중심으로 움직이며 중개업소를 방문하고 있다. 이들은 매수 의사를 밝히지 않고 매물과 대출 정보를 수집하거나 실제 거주자에게 동행을 요청해 내부를 둘러보기도 한다.

중개업계는 임장크루가 실수요자와 구분되지 않고 업무 부담만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보고 있다. 매물을 설명하기 위해 집주인이나 세입자와 일정을 조율하고 각종 권리관계나 가격 조건을 안내하는 일이 반복되지만 대다수가 계약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시장이 침체된 상황에서는 시간 손실이 곧 수익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협회는 이를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로 임장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소비자 측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매물을 둘러보는 행위 자체가 주택 구매의 필수 절차이며 중개서비스의 일환으로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중개 수수료가 이미 과도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온 상황에서 별도의 임장비까지 도입하는 것은 소비자 부담을 이중으로 가중시킨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러한 흐름 속에 직거래 수요도 확대되고 있다. 모바일 플랫폼을 통한 부동산 직거래 건수는 최근 3년 사이 폭증했다. 당근마켓 기준으로 2021년 268건이던 직거래는 2024년 5만9451건까지 증가했다. 거래비용 부담을 줄이려는 움직임이 제도 외부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도 임장비 제도화에 신중한 입장이다. 국토교통부는 협회로부터 관련 내용을 정식으로 전달받은 바 없다고 밝혔다. 현행 공인중개사법은 중개 보수를 거래 성립 시에만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 개정 없이는 제도 도입이 어렵고 사회적 공감대 부족한 상황에서 추진 자체가 쉽지 않다는 판단이다.

해외 사례와 비교해도 유사 제도는 드물다. 미국 일부 지역에서는 매물 열람 전 매수의향서나 중개계약서를 작성하는 절차가 있지만 이는 중개사의 책임과 수수료 배분 구조를 명확히 하기 위한 장치다. 일본의 경우도 내람 신청서를 통해 방문자 정보를 확인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임장 자체에 비용을 부과하지 않는다.

공인중개사협회는 아직 내부 검토 수준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도입 전까지는 국토부 협의와 법적 근거 마련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으며 사회적 합의 없이는 추진이 어려울 수 있다는 점도 고려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임장비 제도는 중개사의 권익 보호와 소비자의 부담이라는 상반된 이해가 맞서는 사안이다”며 “중개서비스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볼 것인지 시장 신뢰를 지키면서도 현장 혼선을 줄일 수 있는 현실적인 해법이 필요한 시점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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