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 실적에 가려진 구조적 과잉
트럼프 2기發 공급 확대도 ‘즉시 효과 미지수’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시장이 ‘시한부 과잉 구조’에 진입하고 있다. 올해부터 연간 90척 안팎의 대형 선박이 순차적으로 인도될 예정이지만, 운임은 이미 ‘붕괴 수위’에 도달했다. 국내 조선업계는 선종 다변화와 친환경 대응 전략을 다듬고 있다.
30일 조선·해운업계에 따르면 최근 LNG 운반선 선복량이 급격히 늘면서 정기용선료가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 발주 물량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일부 선주는 저조한 운임 수익률 탓에 장기계약을 꺼리고 있다고 전해진다.
◇ 선복 늘고 운임 떨어지고···LNG선 호황기 끝?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가 지난 29일 발간한 ‘해운·조선업 2025년 1분기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17만4000㎥급 LNG 운반선의 정기용선료는 하루 2만5231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40% 이상 급락했다. 더 저렴한 구형 선형의 경우 운임은 1만달러선도 무너졌다. 14만5000㎥ 선형의 평균 스팟 운임은 하루 3462달러까지 하락하며, 사실상 ‘적자 영업’이 불가피한 수준에 도달했다.
LNG 운반선은 국내 조선소가 수주하는 고부가가치 선박 중에서도 가장 ‘효자상품’으로 꼽힌다. 지난해까지 국내 조선 3사는 비싼 LNG운반선으로 생산라인을 가득 채웠다. 지난해 발주된 글로벌 LNG 운반선 가운데 70%도 한국 조선소가 수주했다.
실적만 보면 조선소는 아직 호황기를 보내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과 한화오션은 전년 동기 대비 400% 내외의 수익성 개선을 보였다. 삼성중공업도 전년 대비 영업이익이 58% 증가했다.
하지만 LNG운반선 운임이 빠르게 무너지고 있고, 신규 수요도 급감하면서 시장 포화 상태가 가시권에 들어왔다는 경고음이 들리고 있다. 지난 2018년부터 이어진 LNG운반선 신조 발주 붐으로 올해에만 약 100척, 내년과 내후년에는 각각 90척 전후의 LNG운반선이 시장에 풀릴 전망이다. 한국가스공사에 따르면 글로벌 LNG운반선은 777척 수준으로 추정되는데, 3년 내 40% 가까이 규모가 증가하게 되는 셈이다.
폐선은 사실상 정체 상태다. 스팟 운임이 급락하고 국제해사기구(IMO)의 온실가스 중기조치 시행 시점이 다가오고 있지만, 선주들은 여전히 노후선을 시장에 남겨두고 있다. 올해 1분기 기준 LNG운반선 폐션량은 전체 선복의 0.2%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 LNG 수출 확대한다는 트럼프 2기···수주 공백기 ‘여전’
이 와중에 트럼프 행정부의 LNG 수출 확대 정책은 또 다른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화석연료 산업 진흥을 핵심 경제 정책으로 내건 트럼프 2기는 LNG 수출 프로젝트의 허가를 대거 승인하며 공급 확대를 예고하고 있다. 벤처글로벌의 CP2를 포함해 커먼웰스, 델핀, 골든패스 등 주요 프로젝트가 줄줄이 허가를 받으며 미국이 에너지 수출 전략을 본격화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일각선 “트럼프 행정부의 수출 정책이 단기적으로 시장에 미치는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LNG 프로젝트는 최종투자결정(FID) 이후 상업 운전에 이르기까지 통상 3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건설비 상승, 정책 불확실성, 장기계약 확보 여부에 따라 실제 인도는 2028~2030년 이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올해부터 2027년 사이에는 LNG 운반선 발주가 잠시 멈출 가능성이 높아 국내 조선업계가 최대 2~3년의 수주 공백기를 마주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수주가 줄어도 건조는 는다며 안심하는 분위기지만 2026년쯤엔 과잉선복에 따른 후판 발주 조절, 수익성 확보를 둘러싼 충돌이 더 격화될 수 있다”고 했다.
이러한 환경 변화에 대해 국내 조선사들도 선종 다변화와 친환경 대응 전략을 다듬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고압 직분사 방식의 암모니아 이중연료 엔진 개발을 완료하고 주요 선급의 형식 승인을 획득했다. 또한 액화이산화탄소(LCO2) 운반선 설계 인증을 확보하고 관련 수주 활동을 진행 중이다.
삼성중공업과 한화오션도 암모니아를 연료로 한 선박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세 업체 모두 친환경·신규 연료 기반 선박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하려는 전략을 강화하고 있는 모습이다.
양종서 수출입은행 수석연구원은 “신조선 수요가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는 조선업계가 탄소저감을 위한 획기적인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면서 “그렇지 못할 경우 조선시황 개선이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