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자회사 볼파라 인수에 손실폭 확대
흑자전환 2027년 목표···"당분간 유상증자 계획 無"
[시사저널e=최다은 기자] 루닛이 지난해 자회사 볼파라 인수 효과로 외형은 성장했으나 손실폭도 확대됐다. 루닛 자체적으로도 적자 기업인데, 볼파라 손실이 반영된 탓이다. 흑자전환 시점도 2027년으로 미뤘다. 적자 확대에 따른 재정 우려가 커지자, 향후 주주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자금 조달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1일 업계에 따르면 루닛이 흑자전환 시점을 2027년으로 조준하며 중장기 로드맵을 제시했다. 당초 루닛은 2024년을 흑자전환 원년으로 삼았으나 2025년으로 미룬 바 있는데 또 한차례 더 이 시점을 미뤘다. 지난해 미국 볼파라 인수에 대규모 자금이 투입된 데 이어, 볼파라 적자가 더해진 것이 원인이 됐다.
2013년 설립된 루닛은 딥러닝 기반 AI를 통해 암 진단과 치료에 기여하는 솔루션을 개발·판매하는 회사다. 2014년부터 의료 영상 분야에 집중하면서 글로벌 1세대 의료 AI 기업으로 등극했다. 2022년 기술특례상장으로 코스닥 증시에 입성했다. 주요 제품과 서비스로는 암 진단 관련 영상 판독 보조 솔루션 ‘루닛 인사이트(Lunit INSIGHT)’, 암 치료 관련 이미징 바이오마커 솔루션 ‘루닛 스코프(Lunit SCOPE)’가 꼽힌다.
루닛 인사이트는 흉부 엑스레이 영상, 유방 촬영술 영상, 디지털 유방 단층촬영술 영상 등에서 판독 의사의 진료에 보조하는 암 진단 영역 사업이다. 암 치료 영역인 루닛 스코프는 의사의 조직병리 슬라이드 판독을 보조해 바이오마커의 발현율을 정량화하는 제품군과 새로운 이미징 바이오마커를 발굴해 면역항암제의 치료반응을 예측하는 제품군을 가지고 있다.
루닛은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액 542억원, 영업적자는 677억원, 순손실은 815억원을 기록했다. 볼파라 인수 효과로 전년 대비 매출이 116% 신장했지만, 영업손실과 당기순손실 규모도 확대됐다. 루닛의 영업손실은 2020년 210억원, 2021년 457억원, 2022년 507억원, 2023년 422억원, 2024년 677억원을 기록해왔다.
국내 의료 AI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들은 모두 만성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이중 루닛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흑자전환 시점을 올해로 예상했다. 이에 따라 루닛이 의료 AI 분야에서 첫 흑자으로 이름을 올릴 것이란 기대감이 업계 안팎으로 커졌다.
그러나 흑자전환 시점을 두 차례 미룬 것은 시장의 신뢰도를 저해하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이에 대해 루닛 측은 “글로벌 의료 AI 시장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투자 없이는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할 수 없을 것이라 봤다”며 “단순히 흑자전환을 목적으로 영업에 집중하기보다, 그 시점이 조금 늦춰지더라도 미래를 위한 투자를 병행해 성장성을 확보해야만 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루닛의 적자 행보가 장기화되자, 운영비 고갈 우려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루닛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약 524억원으로 집계된다. 1년 안에 현금화할 수 있는 유동자산은 지난해 볼파라 인수에 자체 현금(900억원)이 투입되면서 큰 폭으로 감소했다. 2023년 2304억원에 달했던 유동자산은 지난해 1119억원으로 줄었다.
반면 연구개발비는 증가하고 있다. 2023년 173억원이었던 연구개발비는 지난해 284억원으로 뛰었다. 운영비로 가용할 수 있는 현금 여력이 2년치 R&D를 유지하기에도 벅찬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재정적 한계는 루닛이 1~2년 안에 자금조달을 준비할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또 루닛을 포함한 자회사 볼파라가 모두 적자 기업인 만큼, 운영 자금 확보를 위해 추가 자금조달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지난 2023년 의료AI 산업에 투자자들의 이목이 집중될 당시 루닛의 주가는 13만원대 육박하는 등 투자 호황기를 누렸다. 그러나 경기 침체와 의료AI 기업들의 실적 부진, 의정 갈등에 의한 의료공백 등 의료AI 산업을 향한 회의적인 시선이 대두되자 현재 루닛의 주가는 최고가 대비 절반에도 못 미치고 있다.
이에 따라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자금 조달 방식이 유상증자가 될 것을 염두해 주주가치 훼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통상 유상증자는 주주가치 희석으로 인해 주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미 2년 전에도 루닛은 신사업 진출에 쓸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2000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유상증자를 추진한 바 있다.
시장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루닛은 지난달 27일 진행된 정기주주총회를 통해 운영 자금 조달을 위한 유상증자는 진행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공표했다. 서범석 루닛 대표는 “외부에서 언급되는 자금 부족 문제에 대해서는 주주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자금 조달을 검토 중”이라며 “볼파라 담보를 이용한 차입 등의 방식이 거론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2027년 흑자전환을 가능하게 할 사업 로드맵으로는 대표 제품인 루닛 스코프, 루닛 인사이트의 해외 매출 확대, 아스트라제네카와 공동 연구를 통한 연구용 매출 증가, 볼파라 매출 유입 등을 제시했다. 이를 통해 올해 매출을 전년 대비 100억원 이상 신장시키겠다는 목표다.
루닛 관계자는 “아스트라제네카와의 파트너십 외에도 최근 다수의 글로벌 빅파마들과 새로운 협력 관계를 논의 중”이라며 “루닛 인사이트와 루닛 스코프의 해외 매출 성장도 기대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