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기술력 과시 목적···신차 가격은 두 자리 비율↑
소비자들 “사용 안 하는 기능 빼고 車 가격 더 저렴했으면”
[시사저널e=최동훈 기자] 국내 자동차 업체들이 최근 차량 고급화 일환으로 이용 빈도 낮은 자율주행 기능을 기본 탑재한 동시에 신차 가격을 인상해 온 것으로 파악됐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 기아 등 업체들은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 차로유지보조 같은 부분 자율주행 기능을 최신 차량에 기본 탑재하고 있다.
자율주행 기능은 탑승자 조작 없이 주변 상황, 도로 정보 등을 차량 스스로 인지한 후 판단을 내리며 운행하는 기능을 의미한다. 부분 자율주행 기능은 지정된 조건에서 차량 스스로 운행하되 필요시 운전자 개입을 요구하는 수준의 기술이다. 현대차, 기아가 최신 차량에 기본 장착한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 내비게이션 기반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 차선유지 보조 등이 부분 자율주행 기능에 해당된다.
최신 모델 중 현대차 아이오닉9·팰리세이드, 기아 EV4·타스만·스포티지 등 모델에 각종 부분 자율주행 기능이 기본 장착됐다. 과거 고급차나 인기 모델의 상위 트림에 선택사양(옵션)으로 제공되던 기능이다.
현대차, 기아는 저사양 차량보다 고급 사양을 두루 갖춘 모델을 선호하는 일부 고객층 취향을 고려해 부분 자율주행 기능을 기본 제공하고 있다. 현대차·기아가 적극 판매 중인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 기반의 아이오닉·EV 모델은 모든 등급모델(트림)에 부분 자율주행 기능이 기본 적용됐다.
◇고가 장비 필요···기아 RV 평균단가, 2년새 467만원 인상
자동차 제조사들이 부분 자율주행 기능을 기본화하는 배경엔 안전성 강화, 기술력 과시 등 목적이 담겼단 관측이다.
최근 고령 운전자에 관한 교통사고 비율이 늘어남에 따라 차량 보조·안전 사양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현대차는 운전이 미숙하거나 오조작 가능성이 비교적 높은 초보, 고령 운전자의 고객 비율이 높은 경형 전기차 캐스퍼 일렉트릭에 페달 오조작 안전 보조 기능을 기본 탑재했다. 부분 자율주행 기능을 탑재해 차량 안전성을 강화하면 사고를 줄여 사회적 비용을 더 크게 낮출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다.
다만 부분 자율주행 기능을 탑재할수록 신차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단 분석이다. 부분 자율주행 기능이 작동하려면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위험을 판단하거나 주행 경로를 계획하기 위한 고가 장비가 차량에 장착돼야 하기 때문이다.
라이다, 레이더, 카메라, 제어기 등이 부분 자율주행 관련 장치로 꼽힌다. 해당 장치의 가격은 최근 확대 보급됨에 따라 과거에 비해 인하했지만 여전히 신차 판매가를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 중란 분석이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 전문 기업 HL클레무브가 개발, 공급 중인 라이다·카메라·레이더 등 자율주행(AD) 관련 장치 평균 가격은 2022년 51만9816원, 2023년 52만3039원, 작년 51만6992원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현대차의 국내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등 RV 모델 평균판매단가(MSRP)는 2022년 4641만원에서 작년 5343만원으로 702만원(15.1%) 인상됐다. 같은 기간 기아의 RV MSRP도 4356만원에서 4823만원으로 10.7%(467만원) 올랐다.
권은경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 조사연구실장은 “제조사가 부분 자율주행 기능을 탑재하면 차량 구매 부담이 커질 수 있다”며 “제조사는 차량 사양 구성에 대한 소비자 선호 경향이 양극화한 가운데 규모의 경제를 달성해 신차 가격 상승 요인을 해소하려고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작 소비자들의 부분 자율주행 기능 사용 빈도는 낮은 것으로 파악됐다. 시장조사업체 컨슈머인사이트가 지난 2021년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 이용 관련 소비자 설문 결과, 스마트·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이 자차에 탑재됐단 응답률이 64%였지만 이를 ‘상시 사용’하는 응답자는 35.2%에 불과했다. ‘차로유지보조’(71.5%) 등 타 기능에 비해 상시 사용 비중이 낮았다. 부분 자율주행 기능을 잘 이용하지 않는 고객이 기본화한 신차의 가격에 더 큰 부담을 느끼는 이유다.
최근 신형 스포티지를 구매한 누리꾼 A씨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을 써보니 제 기능을 못하는 건 아니지만 이를 빼고 싼 값에 살 수 있는 선택지가 있었다면 그걸 선택했을 것 같다”고 전했다.
◇ 학계 “안전성은 입증, 제조사·정부가 의무장착 공감대 형성해야”
학계에선 부분 자율주행 기능의 운행 안전성 효과에 주목하고, 기능 탑재에 따른 소비자 부담 전가 없이 확산시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단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 자동차 업체가 협력해 객관적 연구 결과를 기반으로 부분 자율주행 기능 의무 장착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기능 추가 비용을 제도적으로 지원할 만하단 관측이다.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 증가세에 고심해온 일본은 수년간 실시한 테스트 결과를 토대로, 오는 2028년 9월부터 출시되는 신차에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의 장착 의무화를 추진 중이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과 교수는 “부분 자율주행 기능은 현행법상 의무 장착 사항이 아닌데 제조사들이 기본 탑재하고 신차 가격을 인상한 것은 해당 기능을 잘 쓰지 않는 소비자 입장에선 더욱 아쉬울 부분”이라면서도 “기능 탑재에 따른 안전성 강화 취지를 소비자들에게 납득시킬 방안을 마련한 후 순차적으로 의무화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