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1020가구 vs 조합 960가구
사업 지연 우려···법적 공방 가능성도
임대 갈등, 한남뉴타운 전체로 번지나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한남뉴타운 핵심 사업장인 한남3구역이 임대주택 문제로 시끄럽다. 조합과 서울시가 임대주택 수를 놓고 이견을 나타내면서다.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사업 지연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러한 논란이 한남뉴타운 전체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17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시는 한남3구역 내 임대주택으로 1020가구를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전체 개발 규모에서 17%에 해당하는 수치로 공공주택 확대 정책의 일환이다. 반면 조합 측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명시된 법정 의무 비율인 15%를 근거로 960가구만 공급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조합은 임대주택이 늘어나면 일반분양 가구 수가 줄어들고 분양수익 감소로 인해 원주민들의 분담금 부담이 커진다는 입장이다. 일부 조합원들은 13일 서울시청을 찾아 시위를 벌이며 임대주택 비율 감축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번 갈등은 재개발 시 조합이 공공에 기부하는 토지(기부채납) 문제에서 시작됐다. 당초 서울시는 한남3구역 안에 있는 학교 부지를 시가 직접 관리하는 공공용지로 바꾸려 했다. 하지만 주민들이 크게 반대하자 이 계획을 포기했다. 대신 조합이 학교 부지를 기부채납으로 제공하는 것으로 조정됐다. 이에 조합은 “우리가 이미 학교 부지를 기부하는 만큼 임대주택은 좀 줄여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다른 제안을 내놨다. 서울시는 “공원으로 쓸 땅은 줄여줄 테니 대신 임대주택은 당초 계획대로 1020가구를 지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조합은 임대주택이 늘어나면 일반분양 가구가 줄어들고 분담금 부담이 커질 수 있어 반대하고 있다. 양측의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으면서 한남3구역 재개발 일정 자체가 지연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업계에선 이번 논란이 한남3구역뿐 아니라 한남뉴타운 내 다른 구역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서울시가 기부채납을 통해 임대주택 공급을 확대하는 기조를 유지할 경우 다른 구역에서도 유사한 갈등이 반복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남5구역은 조합장 선출 이후 사업 속도가 본격화될 예정이라 이번 협상의 결과가 향후 조합과 서울시 간 협상의 선례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한남4구역 역시 현재 비교적 안정적으로 사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서울시가 기부채납과 연계해 임대주택 공급 확대를 추진할 경우 추가적인 요구를 받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조합과 서울시 간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을 경우 사업 지연뿐 아니라 법적 공방으로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서울시가 임대주택 비율을 일부 조정하는 대신 다른 방식의 공공기여(용적률 상향, 기반시설 확충 등)를 요구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앞서 송파구 오금현대아파트는 서울시가 신속통합기획 대상지로 지정한 후 임대주택 20% 공급을 요구하자 조합이 이를 거부하고 신통기획을 철회한 바 있다. 강남구 개포현대2차아파트는 노인복지시설을 수용하는 대신 용적률을 상향하는 방식으로 임대주택 189가구를 추가 공급하기로 결정했다.
업계 관계자는 “서울시의 공공주택 확보 요구가 정비사업에 큰 변수가 되고 있는 만큼 한남3구역의 사례는 다른 재개발·재건축 사업장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며 “특히 서울 강남권과 여의도 등 고급 주거지로 재개발이 진행되는 지역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조합과 서울시 간의 협상 방식이 향후 서울 전역의 정비사업 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중요한 선례가 될 전망이다”고 덧붙였다.
한남3구역은 한남동 686 일대 38만6364㎡ 면적에 지하 7층~지상 22층, 127개 동, 5988가구를 짓는 프로젝트다. 한남뉴타운 4개 사업지 중 사업 속도가 가장 빠르다. 지난달부터 철거에 들어갔다. 내년 첫 삽을 떠 2029년 준공하는 게 목표다. 현대건설이 시공을 맡아 ‘디에이치 한남’을 선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