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타이어 “후원 종료로 관계 단절···영업활동 방해 부정경쟁행위”
나눔재단 “출연자 조양래 지위 여전···상업상 경쟁·혼동 우려 없어”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한국앤컴퍼니와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한국타이어)가 ‘한국타이어 명칭 사용을 금지해 달라’며 한국타이어나눔재단(나눔재단)을 상대로 제기한 법적 분쟁에서 양측의 관계 파탄과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여부가 쟁점이 됐다.
해당 사건은 한국타이어 조양래 명예회장의 차남 조현범 회장과 장녀 조희경 나눔재단 이사장을 포함한 나머지 세 남매(장남 조현식 고문, 차녀 조희원씨 등)의 경영권 분쟁에서 비롯됐지만, 법률적 쟁점이 구체적으로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62부(재판장 이현석 부장판사)는 7일 한국타이어가 나눔재단을 상대로 제기한 ‘한국타이어 명칭 사용 금지 소송’ 첫 변론을 열고 양측의 주장을 확인했다.
한국타이어 측 대리인은 “2022년 이후 원고들과 피고 간의 후원 관계가 단절됐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가 계속해서 한국타이어의 표지를 사업에 계속 사용하는 것은 후원 관계가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오인되는 등 수요자들이 출처를 혼동할 가능성이 매우 높고, 한국타이어의 영업활동에 방해가 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어 “나눔재단의 활동이 한국타이어 이미지 내지 브랜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면서 “따라서 후원 관계가 단절된 후에도 한국타이어 표지를 계속 사용하는 피고의 행위는 부정경쟁행위로서 금지돼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또 “(그간) 원고들은 피고에게 한국타이어를 포함하는 명칭이나 표지에 대한 묵시적 사용을 허락했는데, 원고는 2024년 4월 내용증명 우편을 발송함으로써 그 사용 허락을 명시적으로 해지했다”면서 “(묵시적 사용 허락에는) 사용 허락이 해지되면 피고는 더 이상 한국타이어 표지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약정 또한 포함 돼 있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판례와 관련해서도 “법원 역시 당사자들 간의 파트너십 약정이 체결됐지만 ‘상호 사용에 관한 조항이 포함되지 않은 상황’에서 파트너십 약정이 유효한 기간에만 상호를 사용하는 것을 허락하는 묵시적 약정이 있었다고 보고, 파트너십 약정이 공유된 이상 피고는 상호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보고 약정에 따른 상호사용 금지 청구를 인용한 바 있다”라고 덧붙였다.
나눔재단 측은 양측의 관계가 단절된 것이 아니며 부정경쟁행위 또한 아니라고 반박했다.
나눔재단 대리인은 “후원이 단절됐다는 이유만으로 원고와 피고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면서 “출연자(조 명예회장)의 지위는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부정경쟁방지법의 제정이유는 부정한 수단으로 ‘상업상 경쟁’을 방지하면서 건전한 상거래 질서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면서 “이 사건에서는 상업상 경쟁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그는 “원고 측은 영리 기업으로 특정한 대가를 지급하고 재화와 용역을 공급받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반면, 피고 측은 비영리 재단으로 수요자에게 일방적인 수혜를 제공하기 때문에 고객의 중복이 있지 않고 경합 또한 발생하지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또 “원고는 (한국타이어 명칭 사용에) 묵시적 사용 허락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저희는 묵시적 사용 허락이 아닌 영구적 명령이 있었다는 입장이다”라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원고인 한국타이어 측에 주장 보강을 요청하며 한기일 속행을 명령했다. 추가 서면을 받는 것 외에 증거나 증인 신청은 없는 것으로 정리했다.
구체적으로 한국타이어 측에 ‘재단법인 설립이라는 단독 행위’와 ‘명칭 사용 해지 통지 후 발생하는 사용 중지 의무’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자세히 설명해 달라고 했다. 또 영리 법인과 비영리 재단 사이의 부정경쟁행위 또는 혼동 발생 여지에 대한 근거를 추가로 밝혀달라고 했다.
재단법인 측에는 한국타이어 명칭 사용을 계속할 의사가 있는지 재확인했다. 재판부는 “한국타이어로부터 더 이상 지원도 받지 못하고 관계도 좋지 못하다. 부부관계로 치면 사실상 파탄된 상태가 아닌가”라고 물었고, 나눔재단 측 대리인은 “지원의 문제는 아니고 설립자의 의사를 존경한다. 조양래 회장과의 관계는 파탄되지 않았다”라고 답했다.
다음 변론기일은 5월2일로 예고됐다.
나눔재단은 지난 1990년 ‘기업의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조 명예회장의 뜻에 따라 설립됐다. 저소득층 의료 지원, 취약계층 주거 지원, 대학생 장학 사업 등을 펼쳐왔다. 한국타이어는 기반금 30억원을 포함해 총 430억여원을 출연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 명예회장의 장녀 이자 조 회장의 큰누나인 조 이사장은 2018년 선임돼 재단을 이끌어가고 있다.
한국타이어와 나눔재단의 갈등은 2022년부터 가시화했다. 조 명예회장이 후계자로 낙점한 조 회장과 나머지 세 남매가 경영권 분쟁을 벌이면서다. 세 남매는 2020년 6월 조 명예회장이 자신의 한국앤컴퍼니 지분 전량(23.59%)을 조 회장에게 블록딜(시간 외 대량매매) 형태로 매각한 것에 반기를 들었다. 차남을 후계자로 지목한 아버지의 판단에 의심을 품고 ‘정신건강이 의심된다’며 법원에 소송(한정후견 개시심판 청구)도 냈다.
조 고문은 이듬해 주주총회에서 조 회장과 맞붙었지만, 경영권에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2021년 말 조 고문은 물러났고, 조 회장이 그룹 회장에 선임되며 경영권 분쟁은 사실상 마무리되는 듯했다.
하지만 조 회장이 200억원대 횡령·배임 및 계열사 부당지원 혐의로 사법리스크를 겪으며 상황이 변했다. 세 남매 측은 총수가 부재인 그룹 상황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다며 여론전을 펼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남을 향한 아버지의 지지는 계속됐다. 조 명예회장은 한국앤컴퍼니 지분을 연달아 추가 매입하며 조 회장을 지원했다. 지난해 7월 대법원이 조 명예회장에 대한 한정후견 개시 심판 청구를 최종 기각하면서 경영권 분쟁을 막을 내렸다.
이 과정에서 한국타이어는 지난해 4월 나눔재단에 ‘한국타이어 명칭 사용을 3주 이내에 중단하라’는 내용의 증명을 보내고, 같은 해 6월 이번 소송을 냈다. 내용증명과 소송은 경영권 분쟁을 끝내고 한국타이어와 나눔재단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과정에서 이뤄졌다.
한국타이어는 “나눔재단이 설립 취지와 다르게 운영되고 있다”며 2022년부터 그룹차원의 지원을 끊었다. 나눔재단 측은 “한국타이어의 기업 브랜드를 훼손하거나 실추시킨 일은 없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