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 물량 쏟아지며 전세 매물 증가···집주인 가격 조정 불가피
“올해는 전세 시장 ‘임차인 우위’···내년부터 공급 감소로 반등 전망”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서울 동북권에 ‘입주장 효과’가 본격화되는 모양새다. 대규모 신축 아파트 단지가 속속 입주를 시작하면서 34평 풀옵션 신축 아파트 전세값이 5억원대까지 떨어졌다. 다만 하반기부터 입주 물량이 감소하면서 이러한 가격 하락세는 단기적 현상에 그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1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 동북권에선 올해 초부터 대형 재개발·재건축 단지들이 입주를 시작했다. 동대문구 이문동에선 지난 1월부터 ‘래미안 라그란데’(3069가구) 입주가 진행 중이다. 이달엔 성북구 장위동 ‘장위자이레디언트’(2840가구)와 광진구 자양동 ‘롯데캐슬이스트폴’(1063가구)가 연이어 집들이에 나선다. 여기에 6월엔 휘경동 ‘휘경 자이 디센시아’(1806가구), 11월에는 ‘이문 아이파크 자이’(4321가구)까지 가세하며 연내 약 1만2000가구 이상의 신규 물량이 시장에 공급될 예정이다.
짧은 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공급이 이뤄지면서 신축 아파트를 찾는 임차인들에게 유리한 시장이 조성되고 있다. 부동산 빅데이터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장위자이레디언트 전세 매물은 1100건을 넘어섰다. 래미안 라그란데 전세 매물도 1200건을 넘어섰다. 공급이 넘쳐나면서 집주인들은 전세가를 낮춰서라도 세입자를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전셋값도 대폭 낮아졌다. 래미안 라그란데는 전용면적 59㎡는 4억4000만원부터, 전용 84㎡는 5억원대 매물이 나오고 있다. 이곳은 입주 지정 기간이 이달 10일까지로 시간이 촉박해 세입자들의 협상력이 높아진 상태다. 일부 세대는 기존 호가보다 3000만원 이상 낮춰 계약하는 사례도 있다.
장위자이레디언트도 융자가 없는 전용 84㎡ 전세가격이 5억5000만원 수준이다. 이는 인근 준신축 단지와 비교해도 비슷하거나 오히려 낮은 금액이다. 인근 준공 7년차인 성북구 석관동 ‘래미안 아트리치’ 전용 84㎡은 5억원 중반대, 동대문구 휘경동 ‘휘경 SK뷰’는 6억원 이하로 전세가가 형성됐다.
이문동 내 한 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풀옵션 신축임에도 인근 시세보다 1억원 이상 저렴하다”며 “일부 단지는 전세가격이 매매가의 60% 수준까지 떨어지면서 갭투자를 고려하는 수요도 보인다”고 말했다.
전셋값 약세는 통계에 반영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 조사에 따르면 2월 셋째 주(17일 기준) 서울 전체 전세가격은 0.02% 상승했지만 동대문구는 0.11% 하락해 서울 지역에서 가장 큰 전셋값 하락을 기록했다. 성북구의 경우도 이번 주 보합(0.00%)으로 돌아섰지만 전주까지 0.05% 하락하며 약세가 지속되고 있다.
입주장 효과는 서울 내 다른 지역에서도 관찰된 바 있다. 지난해 강동구에선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으로 불렸던 올림픽파크포레온(옛 둔촌주공) 1만2032가구가 입주하면서 주변 지역 전셋값이 일시적으로 하락했다. 이 단지 역시 입주 초기에는 전세가가 크게 낮아졌으나 입주가 완료되면서 가격이 다시 반등하는 현상을 보였다.
업계에선 입주 물량 감소로 하락장이 장기간 지속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올해 수도권 아파트 입주 예정 물량은 12만5382가구로 지난해 17만4558가구 대비 28.2% 감소할 전망이다. 경기도와 인천시 입주 물량 감소폭이 커 전세 수요가 서울로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더욱이 내년 수도권 아파트 입주 물량은 올해 대비 40% 가까이 감소한 6만9642가구로 예상된다. 1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최근 10년간 수도권 연평균 입주 물량(14만4977가구)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신축 전세를 찾는 세입자들에게 유리한 시기이지만, 내년 이후 공급 감소로 전세가격이 다시 반등할 가능성이 높다”며 “전세 계약을 고려하는 임차인들은 시장 상황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