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심판 최후변론서 ‘대국민 호소’ ‘북한 지령’ 주장
김건희 특검·명태균 수사 시점에 느닷없이 계엄 선포
‘국가 비상사태’ 주장, 사익 목적 거짓말 인식도 상당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변론이 지난 25일 마무리됐다. 윤 대통령은 1시간8분 동안 77쪽 분량의 최후진술을 낭독했다. 최후진술은 재판에서 큰 의미가 없는 당사자의 주장에 불과하지만, 정치적·역사적 측면에서는 대통령의 사고방식과 인식, 사고 등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기록물로 남게 됐다.
내용은 기대 이하였다. 12·3 비상계엄은 무력으로 국민을 억압하는 계엄이 아니라 형식만을 빌린 ‘대국민 호소’라고 했다. 노동자와 언론인, 정치인들이 북한의 지령을 받아 자신을 정치적으로 공격했다는 허황한 주장도 담았다. 그러나 이를 입증할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근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윤 대통령의 주장은 계엄선포의 요건이 충족됐다는 점을 강변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헌법은 계엄을 선포할 수 있는 상황을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로 규정하고 있다. 2024년 12월3일은 전시나 사변의 상황이 아니었으므로, 유일하게 계엄의 요건을 충족할 상황은 ‘국가 비상사태’ 뿐이다.
윤 대통령 최후진술에 담긴 주장이 차라리 망상이길 바라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가 실로 북한의 개입과 탄핵 공작을 믿는 ‘확신범’이라면 법적 판단은 차치하고 인간적인 이해는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가정은 삐뚤어진 인식이더라도 구국이라는 '공적 이익'을 바탕으로 했을때 성립한다.
그러나 이 역시 거짓말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공천개입과 주가조작 의혹 등 본인과 여사를 향한 형사리스크를 모면하기 위한 ‘사적 목적’ 아래 계엄을 선포하고 뒤늦게 국가 비상사태라는 헛되고 황당한 요건을 생각해 낸 것이라면 어떨까. 자극적인 선동으로 지지자들의 결집을 노린 것이라면 그는 교활한 거짓말쟁이에 불과하다.
실제 지난해 12월3일은 김건희 특검법 표결을 일주일 남긴 시점이었다. 당시 당원게시판 논란이 격화하며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대표가 코너에 몰리자, 친한계가 특검법에 찬성표를 던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세 번째 김건희 특검법은 폐기됐는데, 국회 의결로 계엄이 해제되지 않았다면 현재 논의중인 네번째 특검법은 없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아울러 계엄 선포 당시는 정치브로커 명태균씨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면서 명씨의 이른바 ‘황금폰’이 확보되기 임박한 상황이었다. 검찰은 명씨가 윤석열 대통령 부부를 위해 맞춤형 여론조사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그 대가로 김영선 전 의원을 공천하도록 했다는 의혹을 수사 중이었다. 이 황금폰 속 녹취는 뒤늦게 하나둘씩 공개되고 있다.
윤 대통령의 느닷없는 계엄 선포 배경이 무엇인지 궁금한 이는 기자뿐만이 아니었다. 많은 국민이 당황해 했고, 그 배경을 추측했다. ‘사랑 때문에 OO까지 해봤다’라는 조롱과 풍자 밈이 확산했고, 수많은 관련 기사와 SNS 글이 유통됐다. 사실과 다르더라도 많은 국민은 그렇게 인식했다는 얘기다.
차라리 윤 대통령이 망상에 찬 확신범이었으면 좋겠다. 절대 동의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공적 이익’을 위한 대통령의 결단으로 해석하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