킥스 전년 대비 141%p 급락···농지비는 15%↑
"계열사 건전성 고려 않는 농지비 부과 기준 문제"

서울 서대문 NH농협손해보험 사옥 / 사진=NH농협손해보험
서울 서대문 NH농협손해보험 사옥 / 사진=NH농협손해보험

[시사저널e=유길연 기자] NH농협손해보험이 지난해 실적이 급감하고 자본건전성이 크게 악화된 상황에서도 농업지원사업비(농지비) 지출을 늘렸다. 이에 농협 계열사의 농지비를 결정하는 농협중앙회가 각 금융 계열사의 리스크관리를 고려한 구체적인 기준을 새롭게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농협손보의 지난해 4분기 말 기준 경과조치 후 지급여력비율(K-ICS·킥스)은 175.75%로 한 해 전과 비교해 약 141%포인트 급락했다. 킥스 도입 이례로 보험업계에서 가장 큰 하락폭이다.  킥스 제도의 일부 항목 적용을 유예해주는 경과조치를 적용하기 전 기준으론 당국의 권고치인 150%를 밑돌았을 가능성이 크다. 킥스는 보험사의 자본건전성을 측정하는 지표로 분자는 자기자본(가용자본) 분모는 요구자본으로 이뤄진다.  

지표가 하락한 이유는 당국의 규제 때문이다. 무저해지 보험 해지율 가이드라인 적용으로 보험계약마진(CSM)이 급감한 것이다. 킥스 제도에선 CSM을 가용자본으로 인정해준다. 또 당국이 도입한 보험부채 할인율 현실화 정책도 자본건전성 악화의 원인이 됐다. 이 정책으로 인해 보험부채가 더 늘어 가용자본 규모가 감소했다. 

농협손보의 순익 감소도 킥스 하락의 원인으로 꼽힌다. 당국의 무저해지 가이드라인 적용으로 손실계약이 늘어난 동시에 농작물보험 손해율이 악화돼 지난해 4분기에 491억원의 보험영업손실을 입었다. 이 여파로 4분기 당기순익이 482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전체 순익도 1036억원으로 직전 해와 비교해 8.6% 크게 줄었다. 

하지만 농협손보가 지난해 지출한 농지비는 276억원으로 한 해 전과 비교해 15%(36억원) 크게 증가했다. 업계에선 농협금융지주 계열사에 대해 적용되는 농지비 부과 기준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농지비는 중앙회가 회원과 조합원에 대한 지원·지도 사업 수행에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농협 명칭을 사용하는 자회사에 부과하는 비용을 말한다. 현재 농지비는 직전 3년 평균 매출액의 일정 비율 안에서 결정된다. 연평균 매출액이 10조원을 초과한 계열사는 매출액의 1.5~2.5%, 3조원 초과~10조원 이하는 0.3~1.5%, 3조원 이하일 때는 0.3% 이하가 적용된다. 

/자료=농협손해보험,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문제는 이러한 기준으론 해당 연도의 손익 규모와 건전성 상황이 농지비 산출에 고려되지 않는단 점이다. 지난해 농지비도 한 해 전인 2023년 하반기에 미리 정해졌다.농협손보는 직전 3년 동안의 매출액이 늘었기에 직전 해 대비 늘어난 금액을 그대로 지출했다. 지난해 건전성 악화의 핵심 요인인 규제 강화는 당국이 보험사에 미리 예고한 사안이지만 이미 농지비는 결정됐기에 이를 반영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과거에도 발생했다. 지난 2018년엔 농협생명이 1000억원대의 적자를 기록했음에도 630억원의 농지비를 지출한 바 있다. 

더구나 농협손보의 이러한 농지비 지출은 당국이 정한 경과조치 취지와도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과조치를 시행한 보험사는 배당성향을 낮게 설정해야 한다. 자본유출 규모를 최대한 줄여 경과조치가 시행되는 10년 동안 킥스 비율을 개선하라는 의도다. 경과조치를 적용한 손해보험사의 경우 지난해 배당성향을 손보사 전체 평균의 절반인 17.8%로 정해야 한다. 그런데 농협손보는 사실상 배당과 같은 성격인 농지비를 전체 순익(농지비 부과 전)의 22%로 정한 것이다. 

금융당국이 과거부터 농협금융 농지비 적용 기준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던 이유다. 물론 농협금융지주 계열사들이 납부하는 농지비는 국내 농업 발전을 위해 쓰이기에 다소 많은 금액이 지출되는 것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위기 상황이 발생하거나 규제에 따른 충격이 가해지더라도 일단 정해진 농지비를 지출하는 구조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대형 금융지주가 배당을 늘려 국부를 유출하는 것과 비교하면 농지비는 규모가 늘어나도 이해가 되는 측면이 크다"라면서 "다만 리스크관리 측면이 무시되는 것은 개선돼야 한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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