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올해 하반기 ‘용적이양제’ 도입
재산권 행사·개발 촉진 기대감 커져
미국·일본, 문화재 용적률 팔아 초고층으로
“용적률 매입 수요·가격 책정이 관건”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올해 하반기 ‘용적이양제’ 도입을 앞두고 풍납동, 방화동, 북촌 등 고도제한 지역이 들썩이고 있다. 문화재나 공항 등으로 인해 건물을 높게 짓지 못해 재산권을 제약받던 주민들에게 활용하지 못한 용적률을 팔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다만 일부 주민들 사이에선 향후 재개발 가능성을 고려해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도 존재한다. 용적률 매입 수요와 가격 책정 등 성공적인 제도 정착을 위한 과제도 남아 있다.

25일 서울시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 ‘서울형 용적이양제’가 시행된다. 용적이양제는 고도제한 등으로 인해 법적으로 허용된 용적률을 활용하지 못하는 지역에서 남은 용적률을 다른 곳에 팔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예를 들어 풍납동 상업지역은 용적률이 최대 1000%지만 풍납토성으로 인한 고도규제 때문에 400%밖에 못 쓰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남은 600%를 다른 재개발 지역에 팔 수 있게 된다. 건물주 입장에선 지을 수 없었던 공간을 돈으로 바꿀 수 있는 셈이다.

서울시는 제도 도입 초기인 만큼 문화유산 주변이나 공항 주변과 같이 장기적으로 규제 완화가 어려운 지역을 우선 대상으로 선정할 방침이다. 풍납토성(송파구 풍납동), 북촌한옥마을(종로구 계동), 경복궁 주변(종로구 효자동), 김포공항 인근(강서구 방화동) 등이 첫 적용 후보지로 거론된다.

/ 그래픽=시사저널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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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적이양제는 미국과 일본 등 해외에서 이미 활용되고 있다. 실제 뉴욕의 원 밴더빌트는 용적이양제를 통해 인근 그랜드센트럴터미널·바워리세이빙 빌딩의 용적률을 이전받아 초고층 빌딩(93층·용적률 3000%)으로 개발됐다. 일본에선 도쿄 신마루노우치빌딩(38층·1760%)과 그랑도쿄(43층·1000%) 등 6개 빌딩이 문화재로 지정된 도쿄역의 용적률을 사들여 고층으로 지어졌다. 도쿄역은 용적률을 판매해 확보한 자금(약 5000억원)으로 옛 도쿄역(1941년 건설 당시 모습)을 복원했다. 해외에선 문화재를 보존하는 동시에 도심을 고밀도로 개발할 수 있는 방법으로 통한다.

주민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풍납동의 한 주민은 “당장 용적률을 팔면 돈이 생기겠지만 나중에 고도제한이 완화되거나 재개발이 허용되면 손해 보는 것 아니냐”며 우려했다. 반면 방화동 주민은 “공항 때문에 영원히 높게 못 짓는데 용적률이라도 팔 수 있게 되면 손실을 조금이나마 만회할 수 있을 것이다”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서울시 향후 지역주민 의사를 최우선으로 고려해 ‘서울형 용적이양 선도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선도지역으로 선정되면 민간·공공 협력체계를 구축해 용적이양 추진 전 과정을 시가 전폭적으로 지원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선도사업을 통해 각종 세부 운영기준을 마련하고 향후 제도 안정화를 위한 법령 개정 건의도 병행할 것이다”고 했다.

관건은 남는 용적률을 ‘어디에 파느냐’다. 서울시는 용적률을 파는 곳과 가까운 지역 중심으로 제도를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대문 내 용적률을 강남 재개발 사업지에 무분별하게 판매하는 것은 제한할 것이다”며 “용적률 거래는 해당 지역의 법정 상한선까지만 허용될 예정이다”고 말했다.

매입할 지역이 과연 충분할지도 과제로 꼽힌다. 기존 재개발·재건축 사업지들은 이미 용적률 상한에 가까운 경우가 많아 추가 매입 수요가 얼마나 발생할지 불확실하다. 업계 관계자는 “서울시가 거래 가능 지역을 제한할 경우, 실제 용적률을 사겠다는 수요가 얼마나 있을지는 미지수”라며 “만약 수요가 낮으면 제도 자체가 활성화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용적률 매매 가격의 책정 기준도 중요한 변수다. 서울시는 공시지가·감정평가를 기반으로 가격을 책정할 계획이지만 실제 거래 과정에서 용적률 가치에 대한 매도자와 매수자의 입장이 크게 엇갈릴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용적률 거래 시 공공 개입을 어느 정도 유지하며 가격 안정을 유도할 방침이다.

권대중 서강대 일반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는 “서울시의 용적이양제 도입은 문화재와 공항 주변 등 고도제한으로 재산권을 제약받던 지역 주민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며 “그러나 거래 가능 지역 제한, 매수 수요 불확실성, 가격 책정 등 여러 과제가 남아있다”고 말했다. 이어 “제도가 뉴욕이나 도쿄처럼 성공적으로 정착하려면 서울시의 세심한 제도 설계와 정책 일관성이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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