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금리 인하에도 '대출금리 고공행진'
은행권, 가산금리 올리고 우대금리 축소
[시사저널e=최다은 기자] 금리 인하에도 대출 금리가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주요 은행들이 우대금리(가감조정금리)를 대폭 축소하는 편법을 써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금융당국은 은행권 대출금리 산출 과정을 들여다보는 등 점검에 나설 계획이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국은행이 지난해 두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하했음에도 금리 인하 효과가 미미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은행권 우대금리가 최대 1.4%포인트 이상 줄어들면서 사실상 금리 인하 효과가 사라진 탓이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우대금리 적용 현황과 가산금리 변동 내역 등 은행권 대출금리 산출 과정을 직접 파악하겠다고 나섰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21일 은행권에 기준금리 인하가 은행별로 어떻게 전달되고 있는지를 점검하기 위해 세부 데이터를 제출해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차주별·상품별 준거·가산금리 변동내역 및 근거, 우대금리 적용 현황 등을 구체적으로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대출금리는 대출 기준금리(지표금리)에 원가 마진을 포함한 가산금리를 더한 뒤 우대금리를 빼서 최종 산출한다. 우대금리는 체계에 따라 산출되는 금리가 아닌 대출 신청 건별로 급여 이체, 카드 사용 등을 고려한 은행의 재량적 판단에 따라 정해진다.
은행연합회 소비자포털에 공시된 가계대출금리(신규취급액 기준)에 따르면 주요 은행들의 지난해 12월 기준 우대금리('가감조정금리')는 금리 인하 전인 9월 보다 크게 축소됐다. 특히 우리은행 우대금리는 9개월간 2.23%에서 0.82%로 1.41%포인트나 줄었다. 같은 기간 가산금리를 0.11%포인트 인하했다고는 하지만, 우대금리 축소 폭이 이를 압도했다.
다른 은행들도 모두 우대금리를 축소했다. 신한은행은 0.65%포인트(1.53%→0.88%), 하나은행이 0.28%포인트(2.19→1.91%), NH농협은행이 0.24%포인트(1.88%→1.64%), KB국민은행이 0.13%포인트(2.45%→2.32%) 줄어들었다.
주목되는 점은 시중 은행들이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관리 주문을 명목으로 가산금리도 올렸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기준금리가 두 차례에 걸쳐 0.5%포인트 인하되는 동안 가산금리는 오르고, 우대금리는 축소됐다. 이에 따라 대출금리는 그대로거나 더 올라가는 기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은행권은 가계부채 관리 관련 당국 지침 때문에 대출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가계부채와는 상관 없이, ‘이자 장사’에 몰두한 정황들이 포착됐다. 특히 가계대출 목표치를 충족시키기 위해 대출을 조여야 했던 시중은행과 달리 운용상 여유가 있던 지방은행들마저도 우대금리를 대폭 깎았다.
은행권 대부분이 시장금리 하락에도 이자 이익이 늘어난 결과, 지난해 4대 금융지주는 사상 최대 실적 기록을 세웠다. 4대 금융의 지난해 이자 이익은 총 41조8760억원으로 전년(40조6212억원)보다 3.1% 증가했다.
정부의 가계대출 관리 정책이 은행 이익만 불렸다는 비판이 거세지자, 정치권과 금융당국은 은행권에 대출 금리 인하 압박에 나설 방침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말 은행이 각종 보험료와 출연료 등을 가산금리에 넣어 대출자에게 떠넘기지 못하도록 하는 '은행법 개정안'을 내놨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22일 “작년에 기준금리를 두 차례 인하했음에도 가산금리 인하 속도나 폭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측면이 있다”며 “은행들이 새해 기준금리가 떨어진 부분을 반영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달 18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 회의에서는 “올해 신규 대출 금리에 있어서는 인하할 여력이 분명히 있다”면서 “이를 점검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지난달 16일 금융 상황 점검 회의에서 “가계·기업이 두 차례 금리 인하 효과를 체감할 수 있도록 대출 금리 전달 경로와 가산금리 추이를 면밀히 점검하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