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난성·불법성 낮은 비위행위···낮은 징계로 조직질서 유지 가능”
“빌미 제공자와 형평성 어긋나···사회 통념상 현저히 타당성 잃어”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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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직무상 30만원을 수수한 직원을 해임한 건설사의 징계처분은 과도해 취소돼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징계사유가 인정되더라도 사회 통념상 현저히 타당성을 잃은 징계라면 위법하다는 취지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재판장 박정대 부장판사)는 최근 서희건설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했다.

서희건설에 경력직으로 입사해 2023년부터 평택시의 한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 시공부장으로 근무하던 A씨는 같은 해 7월 지게차 업체 대표 B씨로부터 30만원을 받았다. B씨는 해당 공사현장의 현장관리부장 C씨로부터 ‘A에게 밥을 사줘라’는 취지의 말을 듣고 금품을 건넨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한 달여 뒤 30만 원을 돌려줬는데, 이로부터 얼마 뒤 한 인터넷 신문에 ‘공사에 참여시켜 주겠다고 해 B가 A에게 30만원을 입금했지만, 결국 공사에 참여할 수 없었다’라는 취지의 기사가 게재됐다.

서희건설은 징계위원회를 통해 A씨에 대해 ‘금품수수(배임), 직무를 이용한 사리도모’를 이유로 해고를 처분하고, C에 대해서는 견책을 처분했다. A씨는 지방노동위원회 구제신청을 통해 징계가 과도하다는 판정을 받아냈다. 이에 서희건설은 불복해 중노위에 재심을 신청했고, 재심이 기각되자 이번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서희건설 측은 A씨의 금품수수 행위가 중대하고 심각한 비위행위인 점, 비위행위는 A씨 스스로 작성한 윤리헌장 서약서를 정면으로 위배한 점, A씨가 과거 다른 현장에서도 향응을 제공받아 경고를 받은 전력이 있는 점 등을 이유로 해임이 적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A씨의 비위행위가 해임 사유로 삼을 정도로 중하지 않다며 회사의 해임처분은 부당해고라고 봤다.

재판부는 “시공부장이었던 A가 현장에 지게차를 투입하고자 했던 업체 대표로부터 금품을 수수하는 행위는 직무를 이용해 사리를 도모한 경우로서 각 취업규칙 조항에 의한 정당한 징계사유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있다”면서도 “통상적인 금품수수보다는 그 비난성 내지 불법성이 다소 낮아 그 자체만으로 해고 사유로 삼을 정도의 중한 비위행위라고 보기 어렵다”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A가 먼저 주도적으로 금품을 요구해 수령했다고 볼 자료가 없고, 오히려 C가 먼저 밥을 사주라는 취지로 말한 사실이 인정되는 점, A가 금품수수 후 다시 금품을 돌려준 점 등을 감안했다.

A씨가 실제로는 지게차 투입을 결정하기 어려운 위치에 있었다는 점도 고려됐다. 재판부는 “구체적인 청탁 여부 등 비위행위에 이른 경위와 A가 지게차 투입을 결정할 의사능력이 있었는지 여부 등은 징계양정을 정함에 있어 고려해야 할 결정적인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사실관계를 면밀히 파악하기 위한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았다”라고 했다.

재판부는 현장관리부장 C씨와의 ‘형평성’ 문제도 짚었다. 재판부는 “C가 먼저 언질을 줘 금품수수의 빌미를 제공했고, (C는) 이후 B에게 착공식 쌀 지원 요청을 하는 등 부적절한 행동을 계속했음에도 회사는 C에 대해서는 가장 낮은 수준인 견책의 징계를 했을 뿐이다”면서 “더 무거운 징계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 사건 해고 징계양정은 명백히 형평성에 반한다”라고 했다.

과거 A씨의 전력에 대해서는 “A가 과거 다른 공사현장에서 레미콘 협력업체로부터 향응을 제공받은 사실이 문제 된 적이 있으나 당시 구두경고 외에 별도의 징계는 없었고, 이는 금품 향응수수가 사회 통념상 근로관계를 지속하게 하는 것이 현저히 부당하다고 인정될 정도의 비위에 해당한다는 회사 스스로의 주장에 배치된다”면서 “과거 비위사실을 징계양정에 있어 참고자료로 고려하더라도 가장 중한 해고보다 낮은 수위의 징계처분을 통해 책임을 물음으로써 조직질서나 근무기강을 충분히 유지할 수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 징계사유만으로는 사회 통념상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A에게 책임 있는 사유가 있다고 볼 수 없으므로, 이 사건 해고는 부당해고에 해당한다”면서 “이 같은 결론을 내린 (중노위의) 재신판정에는 어떠한 위법이 없다. 원고의 청구는 이유 없으므로 기각한다”라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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