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자료 회피 이행강제금 법안 탄력
“현행 1회성 과태료 한계 개선 도움”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애플이나 구글, 넷플릭스 등 다국적기업이 세무당국의 정당한 자료 제출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이행강제금을 부과토록 하는 법안에 대한 입법절차가 속도를 내고 있다. 과태료 한 번 내고 탈세하는 게 이익이란 국내 진출 글로벌기업 행태를 막기 위해 필요한 조치이며, 국세 자료 확보 권한 강화를 위해 추가 대책도 마련해야 한단 분석이 나온다.
자국 중심, 보호무역을 앞세운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직간접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내비칠 경우 탈세를 막기 위한 국내법 체계 정비는 미국이 강조하는 공정무역과는 전혀 다른 문제란 점을 당국이 제대로 알려야 한단 조언도 제기된다.
2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최근 세무조사 과정에서 정당한 사유 없이 장부 등 자료 제출을 거부, 기피하지 않는 자에 대해 이행기간 도과 이후 1일당 일평균 수입금액의 0.3% 이내(금액 산정이 어려울 경우 1일당 500만원 이내)로 이행강제금을 부과토록 하는 국세기본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법안은 다국적 기업 등이 세금을 피하기 위해 기존 과태료 제재를 악용하는 사례를 막기 위한 방안이다. 현행법 상 세무공무원 질문에 거짓 진술하거나 직무집행을 거부, 기피할 경우 50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 징수한다. 하지만, 과태료 부과한도가 낮고 반복 부과도 어려워 기업들의 자료제출 의무 이행을 담보하기 어렵단 지적이 나온다.
실제 외국에 본사가 있는 일부 다국적 기업을 중심으로 세무당국 자료제출 요구를 거부해 5000만원 이하 과태료만 내고 수백억~수백억원에 달하는 과세를 회피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해외에 본사를 둔 다국적기업 특성상 과세당국이 직접 자료를 확보하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국내에 진출한 해외 다국적기업 상당수는 공시액을 고의적으로 줄여 사실상 탈세를 저지르고 있다. 예를들어 구글코리아는 2022년 기준 매출액이 3650억원이라고 공시했다. 하지만, 실제 매출 규모는 10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해외 기업들이 매출원가를 실제보다 높게 잡고 영업이익을 줄이거나, 국내 수익을 해외법인 회계로 돌려 세금을 적게 내는 수법, 국내 이익을 로열티 명목으로 본사에 넘기는 식으로 세금을 적게 내는 건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다.
이에 국회에서도 여야 모두 법안 취지엔 큰 이견이 없는 상황이다. 기재위 관계자는 “논의 과정에서 조세탈루를 막아 조세정의 확립을 위해 법안 필요성은 인정되지만, 과세당국의 이행강제금에 대한 자의적 적용, 남용을 방지하도록 보완이 필요하단 의견이 있었다”고 말했다. 세금 소멸시효 중단 등 추가적인 탈세 방지 대책 필요성도 거론된다.
해외 경우도 미국, 일본, 영국은 과세당국의 자료제출 거부 시 벌금 외에 징역형까지 구형할 수 있고, 독일은 징역형과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다국적 기업 탈세 문제를 개선할 수 있단 기대가 나오지만,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트럼프 2기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불만을 내비칠 수도 있단 우려도 나온다. 트럼프 정부는 해외에서 많은 매출을 올리는 구글, 애플 등 빅테크 기업에 세금을 부과하기 위해 국제적으로 도입을 논의 중인 디지털세에 대해 부정적이다.
다만, 글로벌 기업이 우리나라에서 낸 이익을 해외로 이전해 세금을 피하는 것은 트럼프 행정부가 강조하는 공정무역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부분이다. 미국 압박 때문에 정부의 과세 확보 권한을 강화하는 걸 주저할 이유가 없단 지적과 함께 트럼프 정부의 문제제기시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춰 통상마찰이 일어나지 않도록 소통해야 한단 조언이 나온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지금 법 개정은 우리 법체계 내에서 과세하는 부분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문제를 제기할 부분이 아니”라며 “국세청이 과세자료를 확보하지 못한다는 건 미국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 과세 사각지대를 개선하기 위해 1차적으로 법안을 통과시켜 이행강제금을 활용할 필요가 있고, 최종적으론 기존 법체계상 미비한 점을 종합적으로 살펴봐 국세청 과세 자료 확보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