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8영업일 만에 6개 기업 상장예비심사 철회
연이은 상장 첫날 공모가 하회 마감 등 시장 침체 반영
시장 환경 악화 우려 확대 속 분위기 반점 시점에 관심
[시사저널e=송준영 기자] 상장의 첫 단추인 상장예비심사 단계에서 중도 하차한 기업들이 속출하고 있다. IPO(기업공개) 시장 분위기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자 선택한 결과로 풀이된다. 증시 불확실성 확대에다 기준금리 인하 기조 후퇴 등 시장을 둘러싼 환경이 더욱 부정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에서 이와 비슷한 사례가 더 나올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12일 한국거래소 기업공시채널 카인드(KIND)에 따르면 건강기능식품 전문기업 에이치피오의 계열사 ‘아른’은 지난 10일 상장예비심사를 철회했다. 아른은 국내 유아용 킥보드 판매량 1위인 마이크로킥보드를 독점 유통하는 기업으로 키움증권을 주선인으로 삼아 지난해 10월 말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했었다.
최근 상장예비심사를 철회한 기업이 이뿐만이 아니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부품 및 표면처리 전문기업 ‘영광와이케이엠씨’와 항진균제, 아토피피부염 치료제를 개발하는 ‘앰틱스바이오’는 지난 7일 각각 상장을 철회했다. 사물인터넷(IoT) 플랫폼 기업 ‘메를로랩’과 AI 데이터 플랫폼 ‘에이모’도 지난 5일 같은 전철을 밟았다.
여기에 이달 10일 상장예비심사를 철회한 ‘디비금융제14호스팩’을 포함하면 중순이 채 지나지 않은 이번 달에만 6건의 철회 사례가 나온 것이다. 상장예비심사 철회 기업이 지난달 한 곳, 지난해 12월 3곳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두드러진 모습이다.
좀처럼 풀리지 않는 IPO 시장의 냉랭함이 이 같은 현상을 만든 원인으로 해석된다. IPO 시장은 국내 증시가 상승 흐름을 보이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분위기가 살아나지 않고 있다. 기관 수요예측에서 흥행에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상장일 공모가를 밑도는 사례가 연이어 나오면서 투심 위축으로 이어졌다.
실제 올해 상장한 10개 기업 중 8곳이 상장일 공모가를 밑돌며 장을 마쳤다. 이 중 교육 콘텐츠 기업 ‘데이원컴퍼니’는 상장 첫날인 지난달 24일 40% 하락 마감했는데, 신규 상장 종목의 첫 거래일 하한가 40%는 관련 제도 도입 이후 데이원컴퍼니가 처음이었다. 특히 올해 최대어로서 기대감을 높였던 ‘LG CNS’도 상장 첫날 공모가를 밑돌았다.
문제는 시장을 둘러싼 환경이 더 비우호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IPO 시장은 국내 증시 상황과 맞물리는 경향이 있는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 탓에 증시의 불확실성이 증대되고 있다. 증시 불확실성이 높아질수록 위험 자산보다는 안전 자산을 선호하는 경향이 짙어져 공모주에는 다소 불리하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기조 후퇴 우려도 IPO의 겨울을 길게 하는 요소로 분류된다. IPO 시장은 금리가 내려가 유동성이 풍부해질 수록 유리한 까닭이다. 그런데 연준은 인플레이션 우려가 끝나지 않았다며 올해 기준금리 인하에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한국은행도 연준의 움직임을 살펴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추가적인 금리 인하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IPO 시장 반전 시점에 관심이 모인다. 그중에서도 제도가 새로운 계기가 될지에 관심이 쏠린다. 앞서 금융당국은 IPO 시장의 건전화와 성장을 위해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기관 투자자의 의무보유 확약을 확대해 단기 차익 수단으로 변질한 IPO 시장을 개선하고, 수요예측 참여 자격을 강화해 가격발견 기능을 회복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주관사 역할과 책임 강화도 개선 방안에 녹였다.
한 투자업계 전문가는 “시장을 둘러싼 외부적인 환경이나 정책도 중요하지만 결국 IPO 시장 분위기가 되살아나기 위해선 성장성이 풍부한 기업들이 적절한 밸류에이션으로 시장에 등장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는 주관사의 역할이 중요한데 단순히 트랙레코드를 위한 딜 수임이 아닌 매력적인 기업들을 발굴해내려는 주관사들의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