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교체 시 정비사업 정책 변화 우려
2011년 중도 사퇴 이후 대거 해제되기도
“사업 연속성 불투명“···조합들 인허가 속도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오세훈 서울시장이 대선 출마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정비사업장들이 술렁이는 분위기다. 시장직을 조기에 내려놓을 경우 현재 진행 중인 정비사업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에 일부 조합들은 시장 교체 전 인허가를 서두르는 등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6일 서울시와 업계 등에 따르면 오 시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규제와의 전쟁을 통해 경제 활력을 회복하겠다”며 부동산 규제 철폐를 핵심 정책으로 내세웠다. 이후 발표한 규제 철폐안 8가지 중 상당수가 정비사업과 관련된 내용이다. 주요 내용은 ▲상업·준주거지역 내 주거시설 확대 ▲정비사업 인허가 기간 단축 ▲공공기여(기부채납) 비율 완화 등이다.
오 시장은 정비사업과 관련된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신속통합기획과 모아타운 등을 통해 정비사업 인허가를 단축해 주택 공급을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신속통합기획은 정비사업 절차를 간소화해 속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현재 148곳이 지정됐다. 모아타운 역시 저층 주거지역을 하나의 구역으로 묶어 개발하는 방식으로 현재 50여곳에서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외에도 많은 지역에서 정비사업을 준비 중이다.
하지만 오 시장의 대선 출마가 변수로 떠올랐다. 오 시장은 지난 4일 외신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조기 대선 출마 여부를 묻는 질문에 “헌법재판소 결정 이후 상황을 봐서 명확하게 답변하겠다”며 출마 가능성을 열어뒀다. 2주 전 열린 신년 기자 간담회에서도 대선과 관련해 “4선 서울시장으로서 꾸준히 여러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쌓은 경험은 제 개인 것이 아닌 일종의 공공재다”며 “이런 공공재는 여러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만약 조기 대선이 확정되고 출마에 나선다면 시장직을 내려놔야 한다. 향후 새로운 시장이 어떤 정책을 내놓느냐에 따라 정비사업의 방향도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실제 과거 오 시장이 2011년 중도 사퇴한 뒤 박원순 전 시장이 정비구역을 대거 해제한 사례가 있다. 서울시의회의 ‘정비사업 출구전략의 한계 및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12~2018년 서울에서 정비구역을 해제한 곳은 393곳이다. 특히 2012~2014년 사이에 201곳이 해제되는 등 초반에 집중적으로 조정이 이뤄졌다. 이번에도 유사한 상황이 발생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정치적 변수로 인해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재건축·재개발 조합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압구정과 여의도, 목동 등 신속통합기획을 통해 재건축을 추진 중인 초기 사업장에선 동력을 잃을까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일부 사업장은 인허가 절차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압구정에선 최근 3구역 정비계획안을 서울시에 결정 요청(입안)하면서 2구역부터 5구역까지의 정비계획 결정 요청을 모두 마쳤다. 정비계획 결정 요청은 재건축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첫걸음이다. 올해 상반기 중으로 최종 정비계획 결정 고시가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정비사업장의 인허가 일정이 정치 일정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과는 오는 3~4월 사이에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탄핵이 인용될 경우 60일 이내 대선이 치러질 수 있다. 오 시장이 대선에 출마할 경우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같은 해 7월에서 8월 사이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조합들은 시장 교체 전에 최대한 인허가를 받으려 서두르고 있지만 행정 절차상 시간이 빠듯한 상황이다. 대선 정국에 접어들면 서울시 행정도 보수적으로 변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현재까지 오 시장이 추진한 규제 철폐 정책과 신속통합기획, 모아타운 등 주택 사업에서 착공에 들어간 곳이 많지 않아 시장이 바뀌면 정책 연속성이 보장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며 “야권 후보가 당선될 경우 공공주택 중심 정책을 강조하며 정비사업 속도가 늦춰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이어 “시장뿐 아니라 대선 결과에 따라서도 서울시 정책 방향이 바뀔 수 있다는 점도 변수로 꼽힌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