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세무서 상대 불복 소송 제기했지만 기각
미국 시민권자, 소득세법상 '거주자' 지위 인정된 듯
2021년 이후 소득 활동에 추가 과세 가능성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고(故) 구본무 전 LG그룹 회장의 맏사위인 윤관 블루런벤처스(BRV) 대표가 세무당국을 상대로 “123억원의 종합소득세를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 1심에서 패소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재판장 김순열 부장판사)는 6일 윤 대표가 강남세무서장을 상대로 제기한 종합소득세 부과 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서울지방국세청은 2020~2021년 윤 대표를 대상으로 개인통합조사를 진행한 결과 2016~2020년 배당소득 221억원에 대한 종합소득세 신고가 누락된 정황을 확인하고 이를 강남세무서에 통보했다. 강남세무서는 2021 12월 윤 대표에게 종합소득세 123억 7000여만원을 고지했다. 윤 대표는 이에 불복해 조세심판원에 심판을 청구했으나 기각되자 2023년 3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쟁점은 2011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윤 대표가 소득세법상 ‘거주자’ 지위에 있는지였다.
소득세법은 거주자, 외국인인 거주자, 비거주자 여부에 따라 과세범위를 달리한다. 거주자에게는 국내외 모든 과세소득에 대해서 과세를, 비거주자에게는 국내원천소득에 대해서만 과세한다. 거주자의 정의는 한국에 주소를 두거나 183일 이상 거소(居所)를 둔 개인을 말한다. 외국인인 거주자의 경우 최근 10년 중 판정되는 기간이 5년 이하인 경우 국외 발생소득에 대해서는 합산과세하지 않는다.
윤 대표는 자신이 ‘비거주자’에 해당한다며 소송을 제기하고, 재판과정에서 ‘단기거주 외국인’이라는 주장을 추가했다. 단기거주 외국인은 과세기간의 종료일 기준으로 10년 전부터 국내에 주소나 거소를 둔 기간의 합계가 5년 이하인 자로 낮은 세금이 부과되거나 면제된다.
재판부는 기각 이유를 설명하진 않았지만 윤 대표를 ‘국내 거주자’로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강남세무서 측 변호인인 법무법인 가온의 강남규 변호사는 “법원의 이번 판결은 (윤관 대표가) 국내 거주자인 점을 인정하고 미국 거주자인 점을 부인한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간 강남세무서 측은 윤 대표의 배우자·자녀 주거 장소가 국내라는 점, 윤 대표가 배우자·자녀와 생활자금을 함께한 점, 윤 대표가 국내에 거주하는 모친·형제를 위해 주거 장소를 제공하고 생활자금을 지원한 점 등을 근거로 그가 ‘거주자’에 해당한다고 주장해 왔다. 강남세무서 측에 따르면 윤 대표가 이끄는 BRV의 자본조달은 대부분 국내에서 이뤄졌고 투자 대상의 80% 이상이 국내 기업이었다. 투자를 위해 활동한 시간 역시 95%가량이 한국이다.
만약 윤 대표가 소득세법상 거주자라는 판단이 계속된다면 그가 국내에서 얻은 다른 소득에 대해서도 거액의 세금이 부과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소송의 발단이 된 소득세 부과분이 2016~2020년인 만큼 그 이후의 소득 활동에 대해서도 세금이 부과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BRV는 에코프로머티리얼즈 등 국내 투자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둬 이 회사 관련 펀드 운용 보수에 대해서도 세금이 부과될 가능성이 높다.
◇ LG 상속소송 개입 의혹·미공개 정보 이용 등 구설
윤 대표는 고(故) 구본무 LG그룹 선대회장 장녀인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의 남편이다. 윤 대표는 본인의 세금 소송 외에도 LG그룹의 상속 분쟁에 이름이 오르내리며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LG그룹은 다른 대기업과 달리 그간 상속 분쟁과 경영권 소송이 없었다. 하지만 구본무 선대회장이 별세한 지 4년이 지난 시점에서 윤 대표의 장모와 아내인 김영식·구연경 모녀가 구광모 LG그룹 회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자 윤 대표가 배후라는 얘기가 나왔다. 재판 과정에서 구연경 대표 등이 ‘기존 상속 내용을 뒤엎자’고 가족들과 논의한 녹취록이 공개됐는데, 이 자리에는 윤 대표도 있었다.
윤 대표는 최근 부인 구 대표와 함께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기도 했다.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주식을 매입한 혐의다. 그는 구 대표에게 2023년 코스닥 상장사인 바이오업체 ‘메지온’의 유상증자와 관련된 미공개 정보를 알려줘 부당이득을 취하게 한 혐의를 받는다.
희소 심장질환 관련 신약 등을 개발하던 메지온의 주가는 2023년 1만8000원 수준에서 5만4100원대까지 올랐다. 같은해 4월 미국계 투자사로부터 500억 원을 투자 받은 게 호재로 작용했는데, 해당 투자사는 윤 대표가 최고투자책임자(CIO)로 있는 BRV 캐피탈 매니지먼트였다. 검찰은 윤 대표가 아내에게 투자 사실을 미리 알리고, 이를 통해 구 대표가 3만여 주를 사들여 수억 원 대 차익을 냈다고 결론 내렸다.
앞서 금융감독원은 윤 대표 부부의 미공개 정보 이용 의혹을 조사했고, 증권선물위원회는 지난해 10월 두 사람을 검찰에 통보 조치했다. 검찰은 이후 구 대표의 서울 한남동 자택과 경기 평택의 LG복지재단 등을 압수수색하는 등 강도 높은 수사를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