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의 마에스트로 사관학교 시벨리우스 아카데미가 음악계의 명가가 된 히스토리.
클래식 음악계에 새바람을 불어넣고 있는 신新르네상스의 주역인 두 나라가 있다. 하나는 혜성처럼 나타난 조성진과 임윤찬을 품고 있는 우리나라이며, 다른 하나는 지휘자 사관학교로 불리는 시벨리우스 아카데미로 명성을 얻은 핀란드다.
두 나라는 여러 가지 면에서 닮은 꼴이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독립을 유지해 한민족의 정체성을 갖고 있는 게 한국이라면, 핀란드는 스웨덴과 러시아의 끊임없는 침략 속에서도 독립을 유지한 역사적 전통을세웠다. 두 나라는 1960년대까지 극빈 국가로 어려운 시절을 보냈지만, 뚜렷한 자원이 없음에도 인재에 투자해 기술 강국으로 거듭났다는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교육열이 뛰어나 우수한 인적자원이 많다는 점도 흡사하다. 이렇다 보니 천재 음악가들이 쏟아지고 있는 양국의 모습이 우연은 아닌 듯 싶다.
밀레니엄 시대를 맞으면서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전설적인 지휘자들의 퇴장과 함께 젊은 마에스트로 시대가 열리는 분위기다. 베네수엘라 출신 구스타보 두다멜이 27세인 2008년 엘시스테마 운동의 결실인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관현악단을 이끌고 내한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두다멜은 이듬해인 2009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음악감독으로 부임해 클래식 음악계를 놀라게 했다. 카라얀 이후 처음으로 20대 천재 지휘자가 나왔다는 평가가 나왔을 정도. 35세 때인 2017년에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 음악회 지휘를 맡아 역대 최연소 기록을 세웠다.
두다멜의 계보를 잇는 20대 천재 지휘자가 혜성처럼 나타났다. 그 주인공은 바로 1996년 생인 핀란드 출신 클라우스 메켈레. 2017년 스웨덴 라디오 교향악단 지휘로 데뷔한 그는 오슬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거쳐 2019년 파리 오케스트라를 맡으며, 전 세계 메이저 오케스트라의 러브콜을 받기 시작했다. 2020년 9월 세계적인 거장 마리스 얀손스의 뒤를 이어 세계 5대 오케스트라로 꼽히는 콘세르트헤바우 관현 악단의 예술 파트너로 임명됐다. 무려 2027년까지 7년 계약이다. 그는 시벨리우스 교향곡 전곡 녹음을 통해 실력을 인정받았고,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과 <불새>연주를 통해 현대음악에 대한 애호가들의 갈망을 풀어줬다. 그의 신화는 계속되고 있다.
20대에 마에스트로를 예약한 메켈레를 만든 것은 핀란드의 음악교육 프로그램이었다. 사실 핀란드 출신 지휘자 열풍은 이미 진행형이었으며,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고 메가 트렌드라는 분석도 나온다. 사카리 오라모는 버밍엄 시티 교향악단을 맡아 2007년 에드워드 엘가 탄생 150주년 축제를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2012년부터 영국 BBC 교향악단을 맡아 간판 클래식 프로그램 <BBC 프롬스>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에사 페카 살로넨은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핀란드 지휘자 열풍이 몰려왔다. 바그너 스페셜리스트인 피에타리 잉키넨은 2022년부터 KBS교향악단을 맡아 침체기에 빠졌던 교향악단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이에 앞서 오스모 벤스케가 서울시립교향악단 음악감독을 맡기도 했다.
그렇다면 핀란드는 어떻게 지휘 강국으로 떠오른 것일까. 시벨리우스에 대한 민족적인 자부심에서 출발한 시벨리우스 음악원은 지휘에 특화된 시스템을 만들어 세계적인 명성을 이끌었다. 그리고 지휘자 사관학교를 이끈 선각자는 요르마 파눌라다. 파눌라는 1973년부터 21년간 시벨리우스 음악원을 이끌며 세계적인 음악 아카데미로 키워냈다. 그는 지휘자의 개성을 중시하면서도 절도 있는 액션과 군더더기 없는 연주를 가르쳤다. 비디오를 활용해 실습 학생들에게 지휘 모습을 직접 관찰할 수 있게 한 것도 그의 교습 비결의 하나다. 풍부한 실전 연주 경험을 제공한 환경도 그의 교육 프로그램을 더 강하게 만든 원동력이다. 2022년 기준 인구 555만 명에 불과한 핀란드에는 국공립 오케스트라 만 15개에 이른다. 인구 1000만 명의 서울에 5개 국공립 교향악단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실전 환경이다. 인구수 대비 오케스트라 수가 가장 많은 나라라는 평가가 허언이 아니다. 낮이 짧고 밤이 긴 핀란드의 환경도 음악에 대해 더 깊이 있게 성찰하는 계기가 됐음은 물론이다. 이와 함께 린드 국제 피아노 콩쿠르와 장 시벨리우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 등 이제는 세계적인 콩쿠르로 자리 잡은 각종 프로그램도 독보적인 지휘 아카데미를 만드는 토양이 됐다.
시벨리우스의 작품에 특화되고 핀란드 민속음악과 신화를 결합하고, 여기에 바그너와 드보르자크, 프로코피예프 등 주변국인 북유럽과 러시아 주요 작곡가의 레퍼토리를 다룸으로써 낭만주의 시대 이후의 음악에 대한 폭넓은 경험과 해석이 가능해졌다.
우리나라에 세계적인 연주자들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전통 있는 명문대 음악대학 출신을 선호하던 한국에 연주자 중심의 음악학교가 설립되면서다. 1990년 문화부장관을 맡았던 고故이어령 교수는 한국적인 예술 생태계의 다양성 확보를 위해 ‘한국예술종합학교설치령’이 통과되도록 힘을 쏟으며 1991년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가 설립되는 데 산파역을 맡았다. 한예종에서는 매년 5000명의 예술학도들이 음악과 연극, 영상, 무용, 미술, 전통예술 등의 분야에서 수학하고 있다. 짧은 연혁에도 한예종은 한국 바이올린계의 대모 고 김남윤과 첼리스트 정명화, 작곡가 이영조 교수 등을 통해 세계적으로 손색없는 아카데미로 자리 잡았다. 실제로 피아니스트 손열음을 시작으로 조성진, 임윤찬이 세계적인 국제 콩쿠르를 석권하면서 K-클래식을 선도하고 있다.
핀란드 출신 젊은 마에스트로는 앞으로도 더 많아질 것이고, 마찬가지로 한예종 출신의 제2, 제3의 임윤찬이 전 세계 클래식 음악계를 이끌것이라는 기대가 허황된 꿈은 아니리라.
editor 심효진
words 조영훈<리빙센스>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