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없는 정치적 해석부터 유족에 막말도 난무
[시사저널e=엄민우 기자] 모두가 행복해야 할 명절 목전이지만 그 어느때보다 슬프고 암담한 명절을 앞둔 이들이 있다. 제주항공 무안공항 참사 희생자 179명의 가족들이다. 당시 사고는 그 자체로도 슬픈 일이지만 그 이후 우리 사회가 보여준 몇몇 모습들은 그야말로 ‘비극’이었다. 계엄 및 탄핵정국으로 잠시 관심에서 벗어나 있는 항공참사와 관련, 우리사회가 보였던 밑바닥 모습을 정리해봤다.
하나. 이 상황에도 정치적 계산기를 돌리는 정치병 환자들이 난무했다. ‘제주항공 참사와 무안공항 참사 중 무엇으로 불러야 할지’와 같은 중요치 않은 문제를 놓고 머리 굴리는 이들의 모습의 행태는 애처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어떻게 부르는지에 따라 자신들의, 혹은 자신이 좋아하는 정치세력에 뭔가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참으로 눈물겨운 노력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단순 호칭때문에 누구의 잘못이라고 연상하지 않는다. ‘제주항공’과 ‘무안공항’ 중 어느 단어를 내세우나 참사에 대한 느낌은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에 함몰된 이들이 얼마나 일반 대중을 수동적이고 사고할 줄 모르는 존재로 여기는지 드러나는 부분이다. 무엇보다 179명의 희생자 가족들이 뻔히 있는데,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 자체가 정상은 아니다. 사고를 소재삼아 은근슬쩍 자신이 지지하지 않는 정치세력을 공격하려는 기회로 삼는 모든 세력들도 마찬가지다. 일터지면 정치계산기부터 켜는 이들은 사고때마다 등장한다. 상가집에서 싸우는 것만큼 추태가 없다고 했다.
둘. 상처에 소금 뿌리는 인면수심들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이번에도 재확인됐다. 소셜미디어나 인터넷 등에 이들에 대한 명예훼손격 글들을 쏟아졌다. 난데없이 소방관이 사고를 수습하다 사망했다는 가짜뉴스도 누군가 AI로 만들어 돌렸다. 유족들은 슬퍼할 정신도 없는데 익숙하지도 않은 소송을 벌여야 했다. ‘그러지 말자’와 같은 독려는 몇몇 이들에겐 전혀 먹히지 않는다는 것이 이번에도 확인됐다.
미국법원은 총기난사 사건과 관련, 희생자 유족들이 가짜 유족이라는 둥 관심끌기용 콘텐츠를 올린 유튜버에게 조 단위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한마디로 인생을 파산시킨 것이다. 이제 우리도 이에 준하는 처벌이 가능하도록 법을 정비할 때가 됐다. 이미 문명국가에서 하고 있는 판결들이다.
셋. 선무당들의 ‘눈길 끌기’ 경쟁이 시작됐다. 현재 드러난 사실은 일단 비행기가 조류와 충돌했다는 것, 그리고 활주로 앞에 콘크리트 더미가 있어 부딪혔다는 것 정도다. 40년 사고조사 경력의 존 고글리아 항공정비전문협회 회장은 SBS에 출연, 소위 말해 전문가들이라는 이들이 말을 삼가야 하고 공식결과 전까지 그 어떤 ‘가정’도 하지 않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 연방교통안전위원회 이사회 위원을 지내고 각종 항공기 재난 안전 상을 수상한 전문가도 모든 영상을 보고도 함부로 입을 안 여는데, 수많은 아마추어들이 조그마한 단서 하나로 음모론을 쏟아냈다. 오죽하면 한국민간항공조종사협회와 조종사노조연맹에서 확인 안 된 유언비어를 멈춰 달라며 재차 성명까지 냈을까. 그 수많은 ‘썰’ 중 추후 사고 원인으로 운 좋게 들어맞는 것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거 하나 찍어 맞추는 게 우리 사회에 무슨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얕은 지식으로 조사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이 공식조사가 제대로 문제없이 이뤄지는지 감시하는 역할일 것이다. 안 그래도 나라 상황 때문에 다들 고달픈데 말들이 너무 많다. 성숙한 자중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