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임금 판단 요건서 ‘고정성 폐기’ 판례 따라···업계는 “6.8조 임금 상승 부담” 우려
봄철 임단협 앞두고 고용부 행정지침 발표 예정···11년 만에 지침 변경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재직자만 받는 조건부 정기상여금(재직조건부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대법원 판결이 재차 나왔다. 국내 기업의 인건비가 급격히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고용노동부는 조만간 임금체계 개편에 대한 행정지침을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 3부(주심 이숙연 대법관)는 23일 세아베스틸 전·현직 근로자 12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정기상여금은 소정근로의 대가로서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원심 판단에는 잘못이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근로와 무관하게 장애인 수첩 소지자에게만 지급되는 장애인 수당은 통상임금이 아니며, 일급 근로자의 주휴수당 부분은 단체협약상 정기상여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고 해당 부분을 다시 심리하라며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세아베스틸은 재직자에 한해 2월·6월·7월·8월·10월·12월에 100%, 4월에 200% 등 총 연간 800%의 상여금을 지급해 왔다. 원고들은 2015년 재직조건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면서 회사를 상대로 재산정한 각종 법정수당 및 퇴직금, 실제 지급한 금액과의 차액 중 일부의 지급을 청구하며 이번 소송을 냈다.
통상임금은 근로계약 등에 따른 소정근로를 제공했을 때 정기적·일률적으로 받는 임금으로, 연장·휴일·야간근로수당, 미사용연차휴가수당 등 법정수당의 지급 기준이 된다.
반면 회사는 이 사건 상여금에는 ‘재직’이라는 조건이 붙기 때문에 고정성이 없어 통상임금에 반영돼선 안된다고 맞섰다. 지급기준일 이전 퇴사자는 제외된다는 조건이 붙었기 때문이다. 또 원고들의 청구가 신의칙에 반한다고도 주장했다.
하급심 판단은 갈렸다. 1심은 재직자만 받는 정기상여금은 조건 달성 여부가 불확실해 ‘고정성’이 없어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2심은 정기상여금도 일정한 금액이 계속·정기적으로 지급돼 근로자의 생활 유지를 위한 안정적 수단이 된다며 기본급과 정기상여금을 달리 볼 이유가 없다고 봤다.
이날 대법원도 “연간 일정액을 정기적으로 분할 지급하는 정지 상여금은 재직 조건에도 불구하고 소정근로의 대가성, 정기성, 일률성을 갖춘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통상임금에 해당하는 항목도 구체화했다. ‘월 15일 이상 근무조건’이 붙은 수당은 주 5일제 근무를 시행하는 회사에서 일하는 근로자라면 충족할 수 있는 조건이라며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했다.
이번 판결은 지난달 19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한화생명보험,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제기한 비슷한 취지의 사건 판결 취지를 따른 것이다. 당시 전합은 통상임금의 정의를 ‘정기적 일률적으로 지급하기로 정한 임금’으로 정리하면서, 통상임금의 ‘고정성’ 요건을 폐기했다. 즉 통상임금은 소정근로의 대가성, 정기성, 일률성으로 판단되게 됐다. 11년 만에 판례가 바뀐 것이다.
원고를 대리한 김기덕 변호사는 “조건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며 “일급제 근로자에 대해 기본급이 아닌 상여금 등 각종 수당을 포함한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주휴수당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을 재확인했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 경총 “6.8조 추가 부담” 추정···고용부 11년 만에 지침 변경 예정
재직자 조건부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산입이 판례로 굳혀지면서 향후 기업의 인건비 부담은 늘어날 전망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지난달 발표한 ‘재직자 조건부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산입 시 경제적 비용과 파급효과’ 보고서를 통해 6조8000억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이라 추정했다.
먼저 경총은 회원사 설문조사와 고용노동부 '고용 형태별 근로 실태조사' 자료에 근거해 재직자 조건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산입될 경우 연간 6조7천889억원의 추가 인건비가 발생한다고 밝혔다. 회원사 설문조사와 고용노동부 ‘고용 형태별 근로 실태조사’ 자료에 근거한 추정치다.
통상임금 산입 여부에 영향을 받는 기업은 전체 기업의 26.7%이며, 3년 치 소급분을 일시에 지급해야 하는 상황을 가정할 경우 영향을 받는 기업들은 전체 당기순이익의 44.2%를 추가 인건비로 지급해야 한다는 게 보고서 내용이다.
기업의 임금 부담은 내달로 예정된 고용노동부의 ‘통상임금 노사지도 지침’ 배포로 현실화할 것으로 보인다. 통상임금 요건 판단에서 ‘고정성’이 제외되는 내용으로 전망된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2013년 대법원 통상임금 관련 판결 이후 한달 만인 2014년 1월 봄철 임단협 집중 시기 통상임금을 둘러싼 노사 갈등을 최소화한다는 이유에서 ‘통상임금 노사지도 지침’을 배포한 바 있다.
고용부는 지난해 말 대법원 전합 판결을 통해 판례가 바뀌고 이달 초 재차 행정지침을 개정해 발표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이날 세아베스틸 사건의 판결을 확인해 최종 입장을 정리할 방침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