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전세대출 보증비율 100%
갭투자 부추기고 가계부채에 부담
수도권 70~80% 축소 검토
"대출 한도 줄어, 서민층 직격탄"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정부가 전세대출 보증비율을 100%에서 80%까지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전세시장 전반에 혼란이 예상된다. 특히 저소득층과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빌라 시장에 타격이 예상된다. 이번 규제로 인해 한도가 줄어들며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에게 부담이 가중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22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내 전세대출 보증비율이 100%에서 90%로 낮춰진다. 전세대출 보증비율이란 세입자가 전세금을 대출받을 때 주택도시보증공사(HUG)·주택금융공사(HF)·SGI서울보증 등 공적 보증기관이 제공하는 보증의 비율을 의미한다. 수도권의 경우 향후 70~80%까지 내리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그동안 공적 보증기관이 전세대출 금액 전액을 보증해 주기 때문에 은행은 대출을 실행할 때 세입자가 대출금을 갚지 못하는 경우에도 손실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보증기관이 세입자를 대신해 대출금을 상환해 주는 구조 덕분에 은행은 대출금 회수 위험 없이 전세대출을 쉽게 내줄 수 있었던 것이다.
금융위는 이러한 구조가 갭투자를 부추기며 전세대출 잔액이 200조원을 돌파하는 등 주택시장과 가계부채에 부담을 준다고 지적했다. 특히 자기자금으로 전세금을 충당할 수 있지만 대출이 쉽고 금리가 상대적으로 낮은 전세대출을 받아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갭투자 수요를 유발할 수 있다고 봤다. 갭투자 확대는 주택가격을 상승시키는 자극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오늘 서울 정부청사에서 ‘정례 기자간담회’를 열고 “전세대출 보증 100%를 한다고 하면 대출해 주는 은행은 전혀 심사를 안 한다는 얘기다”며 “기본적으로 100%는 비정상적인 조치였고, 그것이 가계대출이 늘어날 때, 부동산 가격이 오를 때 전세대출을 늘리면서 다시 매매 가격을 올리는 기조로 작용된다”고 지적했다.
다만 수도권 규제를 특별히 더 강화하는 방안은 올해 부동산 시장 상황을 보고 결정하겠다는 방침이다. 김 위원장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스트레스 3단계 규제가 7월 1일 시행되는데 이때 부동산 시장 상황과 가계대출 추이를 점검해서 구체적인 수도권 전세대출 보증비율을 정하려고 한다”고 했다.
보증비율 축소가 기정 사실화되면서 서민 주거 안정을 위협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고가 주택 전세나 고소득자와 달리 저소득층이나 서민은 대출이 거절되거나 한도가 크게 줄어들 수 있어서다. 실제로 서울 평균 전세금 6억원 기준으로 보증비율이 80%로 낮아지면 세입자는 1억2000만원을 추가로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저소득자를 중심으로 금리가 오를 가능성도 커지게 된다.
특히 빌라 시장이 직격탄을 맞을 전망이다. 전세대출이 어려워지면 세입자들은 대안으로 월세를 선택할 수밖에 없고 주거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빌라 집주인들 역시 대출 보증비율 축소로 인해 신규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거나 기존 세입자와의 계약이 어려워지는 등 재정적 불안정에 시달릴 수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전세사기와 같은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은 빌라 시장은 이미 전세대출 보증 가입 요건이 까다로워 대출이 어렵다”며 “보증비율이 낮아지면 은행은 위험 부담을 이유로 빌라 전세대출을 더욱 꺼리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빌라 매매시장에도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서울 빌라 매매 거래량은 지난해 7월 2670건에서 12월 1614건으로 감소했다. 거래 규모도 같은 기간 1조897억원에서 5657억원으로 줄었고, 3.3㎡당 평균 거래가격 역시 2888만원에서 2611만원으로 하락했다. 전세대출 제한은 매수 심리를 더욱 위축시킬 수 있다. 매매와 전세 시장이 동반 침체되면서 빌라시장 전체가 장기 불황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서민 실수요자 보호를 위한 세부적인 보완책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권대중 서강대 일반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는 “갭투자 억제라는 정책 목표 달성과 함께 서민 주거안정이라는 과제도 균형있게 고려해야 한다”며 “연소득별 보증비율 차등화, 빌라 등 서민주택 대상 추가 지원, 저금리 대출상품 확대 등 세부적인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