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 수요예측 의무보유확약 확대 및 자격 강화로 단타 방지
증권사 공모가 뻥튀기 방지 및 상장전 투자 규제는 다소 미흡
[시사저널e=이승용 기자] 금융당국과 유관기관이 IPO 제도 및 상장폐지 제도 개선안을 발표했다. 특히 이번에 발표한 IPO 제도 개선안은 수요예측에 참여한 기관들을 대상으로 채찍과 당근을 통해 배정받은 공모주를 최대한 장기 투자로 유도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최근 기술특례 상장 등에서 횡행하고 있는 증권사들의 공모가 뻥튀기와 상장전 투자 행태에 대해서는 규제가 다소 미온적이라는 이유로 형평성 및 실효성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 기관들의 IPO 단타 막기에 주력
금융당국과 유관기관이 21일 발표한 'IPO 제도 개선방안'에 따르면 IPO기업이 상장일 이후 주가가 내리막길을 걷는 이유는 수요예측 과정에 참여한 기관투자자들이 단기차익 목적으로 공모주 배정을 받기 위해 높은 가격을 제시해 공모가를 높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IPO 77건 중 64%에 해당하는 49건에서 수요예측을 통해 주문된 물량의 90% 이상이 희망공모가범위 상단을 초과한 가격이었다.
이 같은 배경에는 소규모 사모펀드나 일임사들이 공모주 시장으로 뛰어들면서 공모주 시장에 과열 분위기가 조성된 영향도 컸다. 중장기 투자 역할을 담당해야 할 기관투자자들 역시 지난해 IPO 77건 중 96%인 74건에서 상장일 매도했다. 반면 일정기간 주식을 팔지 않겠다는 의무보유확약 물량 비중은 지난해 평균 19% 수준에 그쳤다.
금융당국은 이를 해소하기 위해 상장 후 일정 기간 주식을 팔지 않겠다는 의무보유확약 물량에 대한 우선배정 제도를 도입할 예정이다.
의무보유확약 우선배정제도가 신설되면 2026년부터 기관투자자 배정물량 중 40% 이상이 의무보유확약을 제시한 기관에 배정된다. 의무보유확약 물량이 40%에 미달할 경우에는 상장주관사가 최대 30억원 규모 내에서 공모물량의 1%를 취득해 6개월간 보유해야 한다. 단계적 제도 안착을 위해 올해 7월부터 연말까지는 의무보유확약 우선배정 물량이 30%로 적용된다.
정책펀드인 하이일드펀드, 코스닥벤처펀드에도 의무보유확약 의무가 부과된다. 그동안 이들은 공모물량의 5~25%를 별도로 배정받는 혜택을 누렸는데 이제는 최소 15일 이상 의무보유확약을 내걸어야지만 별도 배정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수요예측 과열을 막기 위해 참여 자격도 한층 높아진다. 등록 후 2년 및 총위탁재산 50억원 또는 총위탁재산 300억원을 충족한 기관만이 수요예측에 참여할 수 있다.
희망공모가범위 상단 초과 주문을 유발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던 '초일가점' 제도도 수정된다. 당초 초일가점 제도는 수요예측 마지막 날 주문 쏠림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주문한 물량에 대해 가점을 부여하는 제도였는데 기관들이 공모주를 조금이라도 더 많이 받기 위해 무조건 공모가 상단 초과 가격으로 수요예측 첫날 주문하는 일이 횡행하면서 공모가 거품을 키웠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금융당국은 코너스톤투자자 제도와 사전수요예측제도 도입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두 가지는 법률개정이 필요한 사안이다.
코너스톤투자자 제도는 일정기간 의무보유확약을 조건으로 증권신고서 제출 전 기관투자자에 사전 배정을 허용하는 제도로 IPO기업에 대한 중장기 투자를 유도할 수 있다.
사전수요예측은 상장주관사가 기관투자자들의 투자수요를 사전에 파악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로 공모가가 합리적으로 산정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 기관에는 '엄격' vs 증권사는 봐주기?
금융당국의 이번 IPO 제도 개선안을 놓고 일각에서는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일단 그동안 의무보유확약이 사실상 유명무실한 제도였고 금융당국도 이를 알고 있었다는 점이 직간접적으로 드러났다. 금융당국 발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의무보유확약을 제시하고 공모주를 받아갔지만 상장 후 이를 어기고 매도한 위반건수는 무려 45건에 달했다. 하지만 이들을 대상으로 수요예측 참여제한 징계는 단 5건에 불과했고 제재금 부과도 14건에 불과했다. 26건은 아예 징계가 면제됐다.
금융당국은 앞으로 의무보유확약 위반시 감경 기준을 명확히 계량화하고 예외적인 10~20%를 제외하고는 다음 수요예측 참여가 제한되도록 세부 제도를 설계하겠다고 밝혔다. 참여 제한을 제재금으로 갈음할 수 있는 경우도 최종 제재 수준이 낮은 경우에만 허용하기로 했다.
이번 IPO 제도 개선안이 수요예측에 참여하는 기관 대상 제재에만 집중하고 상장주관사인 증권사에 대해서는 직접적 규제가 미흡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특히 상장주관사인 증권사가 IPO기업에 미리 투자하는 상장전 사전투자 행태에 대해서는 금융당국이 강화한 규제가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분석이다.
현행 자본시장법상 주관사는 해당 주식을 최근 2년 내 취득한 경우 상장 후 30일 이내 팔지 못한다. 6개월 이내 취득시에는 공모가와 가격괴리율 차이에 따라 50% 이상은 6개월, 50% 미만은 1개월 보유해야한다. 금융당국은 이를 30% 이상은 6개월, 30% 미만은 3개월간 의무보유하도록 강화할 방침이다.
하지만 이번 개선안에는 2년 이전에 취득한 지분에 대한 규제는 빠져 있다. 현행 규정상 상장주관사는 IPO기업 주식을 2년 이전에 취득했다면 아무런 규제 없이 상장일부터 마음대로 매각할 수 있는데 여전히 사각지대로 남는 셈이다.
상장 주관사가 IPO기업의 공모가를 의도적으로 띄우는 것을 막기 위해 코스닥의 경우 공모주식의 3%(최대 10억원)를 의무적으로 인수해야 한다.
하지만 최근 증권사들은 상장예정 기업에 미리 투자한 다음 공모가 대비 싸게 주식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의무인수분 손실 가능성을 헤지하고 있다. 상장 전 사전투자로 사실상 공모가 뻥튀기 방지 장치를 무력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그치지 않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