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그룹 총수 중 유일한 미등기이사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 합병 항소심 판결 ‘가늠자’
[시사저널e=유호승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올해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등기이사로 복귀할지 주목된다. 그는 2022년 회장에 취임했지만, 여전히 미등기임원 신분이다. 보수를 받지 않는 대신 기업 경영 과정에서 나타나는 법적 책임에서 등기임원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상태다.
이에 따라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감위)는 이 회장이 등기이사로 하루 빨리 등재돼 책임경영을 펼쳐야한다고 수차례 요구해왔다.
21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이사회는 3월 정기 주총을 앞두고 다음달 이 회장의 등기이사 선임 여부 등의 안건을 논의한다. 자산규모 5조원 이상, 총수가 있는 대기업집단 78곳 중 등기임원을 맡지 않고 있는 총수는 지난해 기준 20명(25.6%)이다.
4대 기업으로 한정하면, 이재용 회장은 최태원 SK 회장·정의선 현대차 회장·구광모 LG회장 중에서 유일하게 미등기이사다. 2016년 10월 임시 주주총회에서 등기이사로 선임됐지만, 국정농단 사태 연루 등으로 4년 임기가 끝난 2019년 물러난 후 현재까지 미등기 상태다.
등기이사와 미등기이사의 가장 큰 차이는 이사회 참여 권한이다. 등기이사는 이사회에서 활동하며 경영·인사 등에 결정권을 가진다. 반면 미등기이사는 원칙상 이사회에 참여하지 못해 결정권이 있다. 기업의 중요 의사 결정은 대부분 이사회를 거쳐야하기 때문에, 미등기이사인 이재용 회장은 공식적으로 경영에 참여할 수 없다.
단, 이 회장은 총수 및 회장이라는 지위를 통해 삼성전자 경영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이사회에 참여하지 않는 상태여서 경영에 나설 경우 운영에 실수나 잘못을 저질러도 민·형사상 책임을 지지 않는다. 즉, 책임 없이 권한만 행사하고 있는 셈이다.
삼성 준감위는 이 회장의 등기이사 복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수차례 강조해왔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역시 삼성전자가 맞닥뜨린 상황이 녹록지 않을 것으로 예상해, 위기극복을 위한 골든타임을 놓치면 안된다는 판단에서다.
준감위는 지난해 하반기에만 세 차례 이 회장의 등기이사 복귀를 촉구했다. 이 회장이 사법 리스크로 법원을 오가고 있지만, 책임경영을 위해 빠른 시일 안에 등기이사에 복귀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도체 기술 경쟁력 강화와 HBM(고대역폭메모리) 생산능력 확대 등을 위해선 총수이자 회장의 결단이 필요해서다.
시장에선 이 회장의 등기이사 복귀 가늠자가 다음달 3일 나올 삼성물산 및 제일모직 부당 합병 관련 항소심 결과가 될 것으로 본다. 사법리스크가 어느 정도 해소되면 등기이사 및 이사회 참여에 대한 걸림돌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이사회는 현재 사내이사 4인, 사외이사 6인 등 10인으로 구성돼 있다. 정관상 3~14명으로 이사회를 구성할 수 있는 만큼 현재 인원에 이 회장이 포함된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다.
재계 관계자는 “이재용 회장의 등기임원 복귀 시그널은 오너 일가의 책임경영 실천에 대한 의지를 시장에 알릴 수 있는 큰 기회”라며 “경영과 책임의 일치를 추구하는 것이 글로벌 스탠더드인 만큼 이 회장이 하루 빨리 법적 이슈를 해결하고 총수로서 등기임원 등재로 권한과 책임을 동시에 행사하기를 바란다”고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