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금리' 2020년 발행 물량 3조 상환해야
KB, 당시 M&A 위해 대규모 조달

(왼쪽부터) KB·신한·하나·우리금융지주 서울 사옥 전경 / 사진=각 사
(왼쪽부터) KB·신한·하나·우리금융지주 서울 사옥 전경 / 사진=각 사

[시사저널e=유길연 기자] 최근 보험사들이 자본성증권을 잇달아 발행하는 가운데 금융지주도 이 행렬에 동참할 전망이다. ‘제로금리’ 시대가 열린 지난 2020년에 찍었던 신종자본증권의 중도상환청구권(콜옵션) 행사일이 올해 도래하기 때문이다. 4대 금융지주가 차환을 해야하는 금액은 3조원이 넘는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금융지주는 최근 최대 4050억원 규모로 상각형 조건부자본증권(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하기로 결정했다. 발행 후 5년 후에 중도상환청구권(콜옵션)을 행사할 수 있는 조건이 붙어 있다. 향후 수요예측에 따라 4050억원 범위 내에서 최종 발행 규모를 확정한다.

신종자본증권은 만기가 없거나 통상 30년 이상으로 만기가 긴 채권과 주식의 성격을 동시에 지닌 상품이다. 금융지주가 발행하는 신종자본증권은 해당 금융지주가 파산하면 투자자는 원금을 받을 수 없게 된다. 발행회사 입장에선 손실 흡수력이 있기에 금융당국에서 자본으로 인정해준다. 보통 발행 후 5년째 되는 해에 콜옵션이 붙는다. 발행회사는 콜옵션을 이행해야 할 법적 의무는 없지만 중도 상환을 해주는 것이 시장의 암묵적인 ‘룰’이다.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하는 이유는 채무상환 때문이다. KB금융은 지난 2020년 5월에 3250억원의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했는데, 5년 콜옵션 행사일이 올해 5월 8일이다. 이와 함께 7월에도 3700억원, 10월엔 4350억원의 신종자본증권을 상환해야 한다. 올해만 1조13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의 콜옵션 행사일이 도래하는 것이다.  

KB금융이 올해 상환일이 다가오는 신종자본증권이 많은 이유는 2020년 푸르덴셜생명(현 KB라이프생명)을 인수하면서 대규모 자금을 조달했기 때문이다. 당시 KB금융은 인수 대금을 지불하기 위해 최대 계열사인 국민은행으로부터 배당을 받은 동시에 채권을 대거 발행했다. 신종자본증권 뿐만 아니라 후순위채권, 선순위채권까지 찍었다. 특히 KB는 푸르덴셜생명 인수로 재무구조에 대한 안정성 비율(이중레버리지비율)이 규제 상한선 직전까지 올랐기에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해 자본을 늘려야 했다. 

더불어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시중금리가 크게 내려간 것도 신종자본증권을 많이 발행한 이유다. 한국은행은 코로나19 확산으로 금융시장이 크게 흔들리자 2020년 3월 기준금리를 0.5%포인트를 인하했으며, 두 달 후에 추가로 0.5%포인트 내렸다. 이에 기준금리는 0.5%로 내려가 ‘제로금리’ 시대가 됐다. 저금리로 자금이 금융시장으로 몰리자 KB도 발행규모를 늘릴 수 있었다.   

KB 외에도 나머지 4대 금융지주도 제로금리 경향 속에서 신종자본증권을 대거 발행했다. 신한금융지주는 올해 9월 4487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을 상환해야 한다. 하나금융지주는 5월에 4500억원, 8월에 4100억원 등 총 8600억원을 갚아야 한다. 우리금융지주는 2월에 4000억원, 6월에 3000억원, 10월에 2000억원 등 총 90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 콜옵션이 행사된다. 더구나 금융지주의 내년 콜옵션 물량은 올해보다 더 많다. 이에 올해 대형 금융지주는 신종자본증권을 대규모로 발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금융지주의 이자부담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9월 신한과 우리가 발행한 신종자본증권이 가장 최근의 사례다. 이 때 두 금융지주는 모두 4000억원을 연 4%의 금리로 발행했다. 최근 시중금리는 당시보다 더 내려갔기에 이보다 낮은 수준으로 발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2020년에 찍은 신종자본증권은 금리가 3%대 초반 수준이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보험사는 기준금리 하락으로 자본건전성이 악화되고 있기에 절박한 상황에서 자본성증권을 발행하고 있다”라면서 “하지만 금융지주는 자본비율에 여유가 있고, 물량을 채우지 못하는 일이 발생할 가능성도 거의 없기에 사정이 많이 다르다”라고 말했다.  

/자료=각 사,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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