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차 전기본 야당 반대로 확정 지연···탄핵정국에 반대 목소리 커져
원전 축소 등 야당 설득 조정안 제시···“체코원전 본계약 차질 우려”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미래 국가 에너지 정책 방향을 가늠할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확정이 야당 반대로 늦어지면서 정부가 주요 국정과제로 내세우는 원전 활성화 방안도 흔들리고 있다. 정부는 고육지책으로 원전 비중을 축소한 조정안을 제시한 가운데, 소관부처의 정치권, 여론 눈치보기가 일을 키웠단 비판이 나온다. 이번 전기본에서 처음으로 사전 공개한 실무안을 두고 관료들의 사후책임 회피를 위한 산물이란 지적이다.

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확정이 늦어지고 있다. 11차 전기본은 2038년까지 15년년간 우리나라 전력수요를 예측, 필요 발전설비를 도출하는 정부의 에너지 계획안이다. 지난해 5월 실무안이 공개됐으나 이후 반대 여론에 부딪혀 진행이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전기본을 반대하는 쪽에선 전력수요가 과장됐고 원전 확대 정책에도 문제가 있으며 재생에너지 확대계획이 미비하단 지적을 내놓는다. 11차 전기본은 2038년 목표 최대전력수요를 129.3GW로 제시했다. 11차 전기본 목표수요(2036년) 118GW보다 11GW이상 많은데, 반도체클러스터 건립 등 수요 증가를 감안하더라도 과도하게 높단 비판이 나온다. 

전기본 수립을 위해선 국회 동의가 필수적인데 과반 의석을 점한 야당도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러한 비판은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더욱 거세지고 있다. 

이날 에너지정의행동 주최로 전기본 폐지를 주제로 한 긴급토론회가 열리는 등 전기본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를 높이는 모양새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은 “11차 전력계획에서 SMR 4기, 대형 핵발전소 3기를 포함시킬 예정이었다”며 “아직 설계가 끝나지 않은 SMR을 전력계획에 추가시키는 문제, 노후원전 10여기에 대한 수명연장, 신규 원전 부지 선정 등이제기됐으나 모두 강행했다”고 지적했다. 

소형모듈원전(SMR)은 정부가 정책적으로 밀고 있는 사안으로 이번 전기본에 처음으로 0.7GW 반영됐다. 이를 두고 대형원전에 비해 안전성이 높아 분산 전원으로서 역할을 기대하는 분위기와 개별단계 검증이 안 돼 전기본 포함이 부적절하단 비판이 엇갈린다.

체코 두코바니 원자력 발전소 전경. / 사진=한국수력원자력
체코 두코바니 원자력 발전소 전경. / 사진=한국수력원자력

전기본이 확정되지 않으면 정부 정책에 맞춰 사업 계획을 세워야하는 발전사 등 전력기업 운영에 타격이 불가피하고, 전기본이 확정돼야 수립할 수 있는 세부 계획들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특히, 정부가 국가적 성과로 꼽는 오는 3월 신규 계약을 앞둔 체코원전 수주 사업에 부작용을 미칠 수 있단 우려도 나온다. 실제 지난해 12월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현안보고에서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체코 정부가 우리나라 상황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전기본 실무안엔 원전 4.9GW가 포함돼 있는데 확정돼야 한국수력원자력이 부지를 구하러 다닐 수 있다”며 “전력수급계획은 적기에 건설되지 않으면 정전 등 직접적 문제가 생긴다. 빨리 확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지지부진한 전기본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정부는 야당 주장을 반영해 원전 부분을 후퇴시킨 조정안을 제시했다. 산업부 측은 조정안에 대해 “대형 신규원전을 원안 3기에서 2기만 반영했고, 재생에너지, 태양광 발전 설비용량을 추가로 확대하는 안”이라고 설명했다. 11차 전기본의 국회 상임위 보고일정을 잡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로 풀이된다.

다만, 전기본의 국회 보고에 차질을 빚는 건 산업부가 자초한 일이란 비판이 제기된다. 그간 없었던 실무안을 만들어 야당에 공개하면서 일이 꼬였단 비판이다.

원전업계 관계자는 “지금까지 전기본을 수립하면서 실무안을 공개한 적이 없다. 바로 초안을 국회에 통보하고, 공청회를 갖고 의견을 받아 확정했다. 실무안을 냈다는 것은 산업부가 간보기를 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여론, 정치권 입장을 보겠다는 것인데 이건 정치에 휘둘릴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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