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의 붉은 심장인 마라케시와 패션의 성지 파리는 프랑스 쿠튀리에Couturier의 손끝에서 피어난 꽃 이야기로 아름답게 연결된다.
패션계의 불세출 천재로 칭송받는 이브 생로랑에게 경력이 시작된 파리와 평화로운 안식처가 된 마라케시는 모두 소중하다. 그렇게 그의 예술혼이 깃든 2개의 박물관이 동시에 개관했는데, 파리 이브 생로랑 박물관Musée Yves Saint Laurent Paris은 약 30년간 이브 생로랑의 창작 활동의 산실이었던 오트 쿠튀르 하우스가 탈바꿈한 것이다. 오트 쿠튀르 작품 8500개를 포함한 3만 점의 의류, 패션 스케치를 비롯한 10만 개 이상의 그래픽아트 작품, 13만 장의 각종 사진과 시청각 자료까지 방대한 아카이브를 자랑한다. 이와 더불어 마라케시 이브 생로랑 박물관Musée Yves Saint Laurent Marrakech은 단순한 전시 공간을 넘어 강당, 서점, 카페 및 레스토랑이 자리한 창의적인 문화센터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브 생로랑의 파트너였던 피에르 베르제Pierre Bergé는 생전에 “파리와 마라케시에 이브 생로랑 박물관이 곧 문을 열며 우리는 또 다른 챕터를 펼칠 것입니다. 오래전 앞으로 닥쳐올 운명을 예측할 수 없었던 시절에 시작한 모험은 계속됩니다”라고 소회를 밝혔다고. 안타깝게도 피에르 베르제는 개관 한 달 전 작고했지만, 2017년 10월 비로소 대중에게 공개된 두 박물관은 올해로 7주년을 맞이했다. 이를 기념하는 최초의 공동 전시회 <이브 생 로랑의 꽃들Les Fleurs d’Yves Saint Laurent>이 현재 진행 중인데, 그가 디자인한 상징적인 의상을 회고하는 것에서 나아가 그의 영감의 원천이자 디자인의 모티프, 생활의 일부였던 ‘꽃’을 메인 테마로 하는 향기로운 여정 속에서 예술 세계를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전시의 큐레이터는 올리비에 사이야르Olivier Saillard와 가엘 마민Gaël Mamine이 맡았다. 올리비에는 파리 의상장식박물관Musée de la Mode de la Ville de Paris, 팔레 갈리에라Palais Galliera의 전 관장이자 독립 큐레이터, 패션 역사가로서 패션을 향한 새롭고 지속적인 탐구 정신을 지니고 있다. 가엘은 발렌시아가의 전 헤리티지 큐레이터이자 이브 생로랑의 작품을 보존 및 홍보하는 피에르 베르제-이브 생로랑 재단의 전 컬렉션 책임자이자 독립 전시 큐레이터로서 거장이 남긴 유산을 심도 있게 연구해 왔다. 이들에 따르면, “총 4가지 테마로 구성된 전시는 이브 생로랑과 그의 파트너 피에르 베르제가 품었던 자연에 대한 숭고한 열정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이브 생로랑이 좋아했던 수많은 예술가들 중에서도,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의 독창적인 세계관은 특히 그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20세기 걸작으로 평가받는 프루스트의 연작 소설《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In Search of Lost Time》에서는 꽃에 대한 메타포를 다양하게 사용한 바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확인할 수 있는 화려한 의상과 그림은 자연, 문학, 패션 사이의 공생을 보여줍니다”라고 소개했다.
영원한 뮤즈, 꽃
19세기 후반 오트 쿠튀르가 탄생한 이래, 꽃은 쿠튀리에들의 창작력을 자극하며 패션계의 아이코닉한 모티프로 자리매김했다. 대형 사이즈의 꽃을 선호한 찰스 프레드릭 워스Charles Frederick Worth는 물론이고, 자크 두세Jacques Doucet는 수국을, 폴 푸아레Paul Poiret는 정제된 스타일의 장미를, 코코 샤넬은 카멜리아동백꽃를 각각 작품에 수놓으며 자신만의 독보적인 세계를 구축했다. 크리스티앙 디오르는 꽃의 유기적인 형태에 이상적인 여성상을 투영하며 새로운 지평을 열었는데, 꽃잎이 활짝 핀 듯한 매력을 선사한 코롤라Corolla 스커트처럼, 꽃은 디오르에게 여성미를 의미하는 메타포였다. 하우스 오브 디올의 워크숍에서부터 오트 쿠튀르 살롱을 이어받은 이브 생로랑 역시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전통을 조화롭게 따랐다. 일례로, 1958년에 선보인 그의 첫 번째 디올 컬렉션 ‘트라페즈Trapèze’에서는 디오르의 행운의 꽃이자 섬세함과 순수함을 뜻하는 은방울꽃 가지로 꾸민 모자 디자인으로 그에게 경의를 표했다. 1962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컬렉션에서도, 그리고 1999년 프랑스 모델인 레티샤 카스타Laetitia Casta가 착용한 실크 가자르 소재의 장미 드레스는 이브 생로랑의 가장 상징적인 작품 중 하나로 남았다. 그는 꽃을 연상시키기 위해 시폰이나 태피터, 실크를 포함한 직물과 색상을 두루 활용했으며, 사실적인 묘사든 상상 속의 표현이든 끊임없이 스타일을 확장시켜 나갔다. 쿠튀리에의 런웨이 쇼와 컬렉션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정원 혹은 풍부하고 시적인 식물 표본집처럼 느껴지는 듯하다.
이브 생로랑은 좋아하는 예술가들의 창작품을 정기적으로 연구했다. 앙리 마티스가 컷아웃 구아슈를 사용해 콜라주를 만든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이브 생로랑은 패치워크와 자수를 적용했으며, 옐로 오렌지빛 카네이션으로 장식된 드레스는 프루스트의 낭만주의를 기념한다. 또한 그가 죽어서도 사랑한, 비옥한 창작 세계에 일조한 모로코의 풍경이나 마조렐 정원Majorelle Garden에서 찾을 수 있는 부겐빌레아 꽃을 닮은 생동감 넘치는 색조도 채용했다. 프랑스 화가 피에르 보나르Pierre Bonnard가 그린 풍경에서 감명을 받아 오간자 앙상블에 추상적인 식물 프린트를 반영하기도 했다. 한편, 파리 박물관에서는 게스트 아티스트로 참여한 뉴욕 기반의 아티스트 샘 폴스Sam Falls의 작품을 공간 곳곳에서 마주하게 된다. 샘 폴스는 자연계에서 깨친 시간과 죽음의 덧없음에 관한 개념을 사진, 조각, 회화를 넘나드는 시각 매체를 통해 개성 있게 그려낸다. 전시는 샘 폴스의 작품과 이브 생로랑의 드레스가 교감하며 대화를 하는 듯 긴밀히 연출되었으며, 혁신적인 비전을 지닌 두 창작가가 시대와 세대를 초월해 보여주는 자연과의 연결이 임팩트를 남긴다. 향긋한 낭만과 실험정신이 충만한 전시는 마라케시 박물관에서 1월 5일까지, 파리 박물관에서는 오는 5월 4일까지 열린다.
문의 파리 이브 생로랑 박물관museeyslparis.com, 마라케시 이브 생로랑 박물관 museeyslmarrakech.com
freelance editor 유승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