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등 주요 경쟁국 천문학적 보조금 지원···국내기업 위기감 속 특별법 논의 지지부진
업계, 주요 쟁점 주52시간 예외 필요성 제기···시동 건 국정협의체 우선 입법 논의 전망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글로벌 경쟁 격화로 국내 반도체 업계의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 등 주요 경쟁국들이 자국 기업을 위해 천문학적인 보조금을 쏟아붓고 있지만, 우리 기업들을 위한 지원책은 논의가 지지부진한 실정이다. 주요 쟁점인 주52시간제 예외 적용 여부는 업계 실정을 반영해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단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조만간 열린 국정협의체에서 접점이 도출될지 주목된다.
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수출 주력 분야인 반도체 산업이 위기에 놓였다. 반도체가 경제안보 핵심으로 부각되면서 미국, 일본, 중국, 대만 등 경쟁국들이 막대한 보조금 및 정책 지원에 나서고 있다.
특히, 저가 시장을 중심으로 한 중국 반도체 기업 성장세가 두드러진다. 몇 년 전만 해도 중국 반도체 산업 경쟁력은 우리나라보다 상당히 뒤떨어져 있단 평가였으나, 최근 구형 반도체를 중심으로 점유율을 크게 높이며 국내 기업을 위협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반도체 기업을 위한 펀드를 64조원이 넘는 규모로 조성했고, 일부 기업의 경우 정부가 직접 대주주로 투자, R&D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미국도 지원에 적극적이다. 생산 및 연구개발을 위한 보조금을 76조원 규모로 투입하고 있다. 출범을 앞둔 트럼프 2기 행정부도 반도체 지원 기조는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관세 부과도 예고하면서 우리 반도체 기업 부담이 커질 수 있는 상황이다. 우려가 현실화할 조짐도 보인다. 지난해 4분기 삼성전자 매출은 직전분기 대비 5.2% 감소한 75억원, 영업이익은 29.2% 줄어든 6조5000억원을 기록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 반도체가 쫓기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투자”라며 “그간 메모리반도체는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투자를 했고, 시스템, 첨단 반도체는 우리나라와 대만 정도였는데 최근엔 미국과 일본, 유럽이 가세했다”고 말했다.
이어 “경쟁이 늘어났다. 5개 국가에서 모두 반도체를 만들어 쏟아내면 누군가는 죽게 돼 있는데 우리나라가 아니란 보장이 없다”며 “미국, 일본, 유럽은 원천기술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는 그간 빠른 기술개발과 투자를 바탕으로 구축한 원가경쟁력으로 올라왔는데 지금은 이런 강점이 없어졌다”고 덧붙였다.
과거 1990년대 미국과 일본은 원천 기술을 갖고 있음에도 우리나라보다 원가경쟁력이 밀리면서 반도체 분야를 포기했는데, 우리나라가 같은 상황에 처할 수 있단 우려다.
이러한 위기감은 업계를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고 정부도 수수방관만 한 건 아니었다. 국회에도 보조금 지금 및 제도 개선을 담은 다수의 반도체 산업 지원책을 담은 법안이 제출돼 있으나, 처리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여야 모두 반도체 기업 지원 취지엔 공감하지만, 연구개발 직군 근로자의 주52시간제 적용 예외 여부를 두고 이견을 보이고 있다.
여당은 업종 특성상 주52시간제 예외가 필요하다고 보지만 야당은 근로기준법 근간을 흔들 수 있다며 우려한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관계자는 “반도체 지원 문제는 지난해 22대 국회 개원 때부터 필요성이 제기된 사안이고 여야 모두 필요성은 인정하고 있는 사안”이라며 “일부 여야간 이견이 좀 있고 최근에 정국이 어수선하다보니 결론을 내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선 반도체 연구개발 환경 특성을 감안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미국은 치고나가고 중국은 쫓아오는 상황에서 지금과 같은 기술 개발 속도로는 견딜 수 없다”며 “속도를 빠르게 하려면 집중적으로 해야하는데 주52시간제로 인해 집중을 못하게 하고 일이 중간에 일이 끊기다보니 연구개발 과정에서 비생산적으로 낭비되는 시간이 많아진다”고 말했다.
최근 탄핵정국으로 반도체특별법 논의가 교착 상태에 빠진 가운데 정치권에서 시동을 건 국정협의체가 활로가 될지 주목된다. 여권 관계자는 “정부가 여야 모두 참여하는 국정협의체 실무회의가 9일 열기로 했다. 이 자리에서 반도체산업특별법 입법 논의를 우선적으로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