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 회장 결정 전 계열사 6곳 대표 인사 단행
강호동 중앙회장이 사실상 계열사 CEO 결정
인사 권한 약한 지주 회장···"외형만 신경분리"
[시사저널e=유길연 기자] NH농협금융지주가 지난해 연말 인사를 통해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임원 선임을 마무리했다. 대대적인 교체가 이뤄졌다. 농협금융 회장과 함께 전체 계열사 9곳 중 은행, 생명보험, 손해보험, 저축은행, 캐피탈, 자산운용 등 6곳의 대표가 바뀌었다.
그런데 농협금융은 새 회장을 선임하지 않은 채 이번 인사를 단행했다. 계열사 CEO와 임원 인사가 모두 이뤄진 후 차기 농협금융 회장을 내정한 것이다. 이석준 현 농협금융 회장은 퇴임이 확정된 상황이기에 인사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이다. 이 회장은 모기업인 농협중앙회장이 바뀌었기에 이미 인사 전부터 교체될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이에 이번 인사는 중앙회장이 노골적으로 개입한 결과란 비판이 나온다. 그간 농협금융 계열사 대표는 농협금융 회장이 결정한다는 외형적 모양새라도 갖췄다. 퇴임하는 이석용 전 농협은행장도 지난 2022년 12월 이석준 농협금융 회장이 내정된 후 약 10일 후에 선임됐다. 작년 12월 한창 인사 시즌에 돌연 계엄 사태가 발생한 것을 고려하더라도 원칙과는 거리가 먼 결정이란 지적이 나온다.
더구나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은 계열사 대표 자리에 자신의 측근들을 대거 임명한 것으로 파악된다. 최대 계열사인 농협은행 수장으로 선임된 강태영 행장은 강 회장의 ‘복심’으로 알려졌다. 또 이번에 선임된 박병희 농협생명 대표와 송춘수 농협손보 대표 내정자는 각각 경북 청도와 경남 합천 출신이다. 경남 합천율곡조합장을 지내다 중앙회장에 당선된 강 회장과 동향이다.
특히 서국동 전 농협손해보험 대표와 오세윤 전 NH저축은행 대표는 임기가 아직 1년이 남았는데도 중도 교체가 됐다. 두 대표 모두 이성희 전 농협중앙회장이 중용한 인물이다. 서 전 대표는 이 전 회장의 비서실장을 했던 경력도 있다. 강 회장이 측근 위주의 인사를 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게다가 송 대표와 김장섭 NH저축은행 대표는 2년간 조직을 떠났다 이번에 복귀했다. 농협금융 계열사 인사에서 퇴임한 임원이 대표직에 재취업하는 것은 이례적인 경우다. 강 회장은 지난해 상반기 농협중앙회 임원과 경제지주 계열사 대표 인사에서도 이미 퇴임했지만 자신의 선거 캠프에 참여했던 인물들에게 대거 자리를 준 바 있다.
중앙회장의 인사권에 끼치는 영향력이 막강하다 보니 농협금융 회장의 존재 자체에 대한 의문이 커진다. 지주 회장이 주요 계열사 인사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면 그룹 내에서 하는 역할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농협금융 회장은 정부 부처를 상대로 한 대관 역할에 국한되는 것 아니냐는 쓴소리도 나온다. 농협금융 회장은 정권 코드에 맞는 관료 출신들이 맡아왔다.
물론 농협중앙회는 농협금융지주의 지분을 100% 소유하고 있기에 지주 계열사 인사와 무관할 수 없다. 하지만 지주의 수장이 자회사 인사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면 이는 지배구조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지난해 NH투자증권 대표 인사에서 중앙회가 개입하려고 하자 금융당국이 농협금융의 지배구조를 들여다본 이유다.
농협은 ‘신경분리’(금융사업과 경제사업의 분리)를 진행한지 10년이 넘었다. 그간 농협금융은 국내 5대 금융지주로 급성장했다. 그러나 인사 등 기본적인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으면 신경분리는 성공했다고 평가하기 힘들 것이다. 앞으로 몸집만 키우는 것이 아니라 내실도 다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