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횡령·사기는 연례행사처럼 발생, 규모도 점차 확대
연초에는 홍콩H지수 ELS 불완전판매 논란 발생
각종 배임, 횡령 사고 이어 우리금융 전 회장 친인척 부당대출 사건 터져
내부통제 개선 강조하지만 여전히 실효성 의문···"경영 문화 개선 및 내부통제 감독 관련 이사회 역할 강화해야"
[시사저널e=김태영 기자] 은행권의 허술한 내부통제는 올해도 계속 논란에 휩싸였다. 은행권에서의 횡령·사기 사고는 연례행사가 되다시피했고 규모도 점차 커져갔다. 연초에는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불완전판매 논란이 발생했고 각종 배임, 횡령 사고에 이어 하반기에는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친인척 부당대출 사건까지 터졌다. 굵직한 금융사고들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은행권을 향한 소비자들의 신뢰는 무너졌다. 사건사고가 터질 때마다 은행권은 내부통제 개선을 외치고 있지만 여전히 실효성에 대한 의문부호가 따라붙고 있다.
◇5대 시중은행 금융사고, 지난해 대비 2배 이상 증가···KB국민은행 압도적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3분기 누적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주요 시중은행의 금융사고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두 배 이상 증가했다. 각 시중은행의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3분기 누적 기준 금융사고는 총 53건에 달한다. 이는 지난해 동기 25건과 비교해 두 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시중은행별로는 KB국민은행이 모두 19건으로 가장 많은 금융사고가 발생했다. 100억원 이상 규모의 금융사고도 3건 발생했다. 이어 NH농협은행이 16건, 하나은행 8건, 우리은행 6건, 신한은행 4건 순이었다. 지난해 대비 사고건수가 줄어든 곳은 신한은행 한 곳이다. 100억원 이상 대형 금융사고는 올해 5건 발생했다. KB국민은행이 3건, 우리은행 2건이다.
사고액 전체 규모만 놓고 봐도 KB국민은행이 가장 컸다. KB국민은행의 금융사고 규모는 총 669억원에 육박했다. 뒤를 이어 이어 우리은행 600억원, NH농협은행 300억원, 하나은행 70억원) 신한은행 13억원 등이 발생했다. 아직 4분기는 집계가 완료되지 않았지만 신한·우리은행 등에서 10억원 초과로 공시된 금융사고 건수만 이미 4건이나 된다.
◇상반기 홍콩H지수 ELS 불완전판매 논란···고난도 투자상품 판매금지 이슈로 이어져
연초에는 홍콩H지수 기초 ELS 손실 사태가 은행권을 흔들었다. 중국경제 악화로 홍콩H지수가 급락하면서 이를 기초자산으로 한 ELS 상품에서 수조원대 손실이 났고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가 배상비율을 30~65% 수준으로 결정하면서 은행들은 대규모 배상에 나서야 했다.
홍콩ELS는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SC제일은행 등 국내 주요 시중은행들이 모두 판매했던 상품이라 배상 규모도 상당했다. 은행들은 배상액을 올해 1분기 충당부채로 반영하면서 순이익이 대폭 꺾이기도 했는데 5대 주요 은행에서만 총 1조6650억원 규모의 ELS 배상액 충당부채가 적립됐다.
홍콩ELS 손실사태 충격은 은행의 고난도 금융투자상품 판매금지 이슈로 이어졌다. 은행에서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는 고난도 상품을 판매해도 괜찮은지를 두고 학계와 업계, 소비자업계가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있다. 현재 금융위원회는 고난도 금융투자상품 판매 개선방안을 마련 중인데 이해관계자 간 입장차가 커 고민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하반기 전 우리금융 회장 친인척 부당대출 사태 발생···리스크 관리 의구심 확대
이어 하반기에는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친인척 부당대출 사태가 금융권 안팎을 뜨겁게 달궜다. 특히 조병규 우리은행장이 연루됐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며 허술한 내부통제 시스템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앞서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지난 10월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부당대출 재발방지는 물론 대대적인 조직 쇄신에 나설 것을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최근 금융감독원 검사 결과 임 회장 재임 중에도 불법 대출이 실행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내부 통제를 넘어 대응 능력과 리스크 관리에 대한 의구심까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은행별 책무구조도 제출 및 내부 조직 개편 단행···조직문화부터 바꿔야 지적
이처럼 대규모 금융사고가 연례행사처럼 이어지자 금융지주를 비롯한 은행들은 지난 10월 말 금융사고 책임자를 담은 책무구조도를 금융당국에 조기 제출했다. 이에 맞춰 책무 구조도 이행 등 책무 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전담팀을 신설하기도 했다.
아울러 금융지주사들은 연말 인사에서 대대적으로 내부 조직 개편 나섰다. 잇따른 금융사고에 본부와 임원을 축소하는 한편, 자회사 대표를 대규모 물갈이하기도 했다. 위기 대응과 세대교체를 명목으로 1970년대생을 신규 경영진으로 임명하는 등 젊은 피 수혈도 단행했다.
전문가들은 은행권이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조직문화부터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올해 금융사고들은 예전부터 지적돼왔던 구조적인 문제들이 드러난 것인 만큼 책무구조도를 통한 지배구조 변화뿐 아니라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성수용 한국금융연구원 교수는 최근 금융사 내부통제시스템 혁신방안 국회세미나에서 "금융소비자의 신뢰가 비교적 높은 시중은행에서 커다란 금융사고를 반복적으로 발생시키고 있어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며 "금융소비자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경영문화를 정착해야 하고 장기 근무 직원에 대한 인사관리 및 자금집행체계 강화, 내부통제 및 위험관리 정책 수립·이행 등에 대한 감독 권한을 이사회에 부여하는 등 이사회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