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주 정비사업장 줄었지만 총 수주액 늘어···알짜사업장 ‘올인’ 영향
내년도 한남4구역 등 황금입지만 경쟁입찰 가능성 높아
[시사저널e=노경은 기자] 올 한해 건설사들의 정비사업 선별수주 기조는 더욱 뚜렷해진 모습을 보였다. 출혈경쟁을 통한 불필요한 홍보비용 소모 및 이미지 타격을 줄이겠다는 심산으로 경쟁을 기피하며 꼭 필요한 사업장에만 단독입찰해 수의계약으로 일감을 따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지난 수년 간 건설사들이 앞다퉈 수주고를 자랑했던 것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 것이다. 업계에서는 내년에도 이와 같은 분위기가 더욱 뚜렷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올해 정비사업 수주 1위는 연간 수주액 6조원을 돌파한 현대건설이 확실시된다. 이로써 현대건설은 2019년부터 6년 연속 정비사업 왕좌를 지키게 됐다. 현대건설은 서울 반포와 여의도, 부산 사하구, 대전 서구 등 전국 9개 정비사업장에서 시공권을 따냈다. 지난해 11개 사업장의 일감을 확보한 것에 비하면 2곳이나 줄어든 수준이다. 다만 총 수주액은 4조6000억원이던 지난해에 비해 올해는 약 1조5000억원이 늘어났다. 알짜 일감으로의 경쟁없는 선별 수주 기조가 더욱 뚜렷해진 영향이다.
이는 정비사업 1위 현대건설만이 아니다. 올해 1월부터 현재까지 서울의 총 30개 정비사업장에서 시공사 선정이 있었는데, 이 중 두 곳을 제외한 28곳이 수의계약으로 시공권을 확보했다. 올해 3월 말 여의도 한양아파트 시공사 선정 총회에는 한강뷰에 여의도 재건축 1호 사업장이라는 상징성이 더해지며 현대건설과 포스코이앤씨가 경합을 벌였고 현대건설에 시공권이 돌아갔다. 올해 8월 말에는 타워팰리스 옆 도곡개포한신 재건축에서 DL이앤씨와 두건건설이 경쟁을 하면서 DL이앤씨가 사업권을 챙겼다. 하지만 이밖에 서초구 신반포2차, 영등포구 신길2구역, 동작구 노량진1구역 등 총 2000세대를 넘는 대규모 일감을 비롯한 28곳의 정비사업장은 단독입찰에 그쳤다.
그 배경으로는 건설부동산 경기 업황 악화가 꼽힌다. 올해 1월 한국기업평가가 신용등급을 부여한 25개 건설업체 가운데 7개 업체의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됐을 정도로 건설부동산 경기는 좋지 않았다. 미분양 물량이 늘어나면서 매출이 줄고, 수주에 몸을 사려 수익성이 감소함에 따른 결과다. 신용등급 평가 요소는 매출액이나 사업 포트폴리오 등 사업항목과 EBITDA(상각 전 영업이익‧에비타), 부채비율과 같은 재무항목으로 구성된다.
시장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0월 말 기준 전국의 미분양 가구는 6만5836가구로 올해 1월 6만3755가구보다 2081가구 늘어났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내년에도 이와 비슷한 분위기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화 문제, 건축비 인상 등을 이유로 건설사가 자체적으로 전략적 요충지라 여길만한 알짜 사업지가 아닌 이상 입찰에 참여하기를 꺼리는 분위기가 만연한 것이다.
다만 알짜 사업장을 확보하기 위한 전쟁은 내년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일부 건설사는 사업성이나 지역 상징성을 갖춘 곳을 위주로 수주한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압구정과 같은 전략적 지역에 한해서 수주 전담 사업소를 만들기도 한다. 이외에도 방배15구역, 개포주공6·7단지, 여의도 대교, 잠실우성1·2·3단지 등 벌서부터 경쟁입찰 구도를 형성하며 물밑작업이 치열해지는 사업장도 적지 않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시장 상황은 안 좋은데 건축비도 상당히 오르다보니 그간 건설사들이 눈치껏 경쟁입찰을 피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사비 원가와 흥행 가능성 등 사업성이 보장되면서 브랜드 이미지를 크게 제고할 수 있는 사업지라면 과감히 움직이는 모습이 두드러질 것”이라고 내다봤다.